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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May 14. 2020

이탈리아

밀라노, 베네치아

미국에서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유럽여행을 가는데 이태리에서 만나자며. 

밀라노에서 좀 있다가 베니스도 여행하려 한다던 친구에게 "베니스 가봤는데...." 라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지만 아뿔싸, 나는 피렌체와 헷갈렸던 것이다. 베니스는 아직 경험하지 못한 여행지였으며 돌아보면 내 인생 제일 예쁜 여행지 중에 하나로 뽑힌다. 


떠날 때만 해도 나의 무식함으로 피렌체와 베니스를 혼돈하고 있는 줄 몰랐기에 그저 많고 많은 유럽 성당이나 우둘투둘한 돌길이나 뜨거운 햇볕이나 그게 그거지 뭐.... 라며 친구와 여행을 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고 있었다. 기차를 타고 공항에서 밀라노로 들어가는 길에 공연을 하러 가는 독일인 일행을 만났다. 도착하자마자 떠나는 기차에 올라타느라 미처 티켓 발행을 하지 못한 나에게 그룹 티켓을 가지고 있던 그들은 한 명분이 남았다며 나에게 공짜 티켓을 만들어주었다. 반면에 친구는 오는 길에 지갑을 소매치기 당해 그 안에 있던 현금 500유로와 카드를 전부 잃어버렸다. 그리하여 내가 가진돈으로만 여행을 해야 했던 우리의 가난한 여행이 시작될 참이었다. 


베니스는 너무 아름다워서 그다음 해에 한국에서 사업차 박람회를 온 친구들을 만나러 한번 더 갔었다. 언제나 가도 언제나 로맨틱한 베니스. 


MILANO


유럽은 지역마다 지역을 대표하는 동물이 있다. 예를 들면 스투트가르트는 말, 그래서 포르셰의 한가운데 Stuttgart와 말이 그려진 문양이 있는 것이다. 밀라노는 코끼리였다. 곳곳에 코끼리가 예쁘게 데코 되어 있었다.


첫날은 고작 3시간의 이동거리도 저질체력으로 피곤했던 나와 미국에서 유럽 전역을 돌고 마지막에 소매치기로 영혼을 털렸던 친구의 긴긴 낮잠으로 하루가 그냥 지나가버렸다. 


최애 언니와.

다음 날 뒤셀도르프에서 날아온 언니와 합류했다. 언니는 문화예술인(ㅋㅋ) 답게 이미 곳곳에 예쁜 카페와 볼거리들을 알고 있었다. 관광명소라던가 웅장한 건축물들은 제쳐두고 여기저기 골목만 누볐기 때문에 정말 기억이 가서 우리 동네처럼 돌아다닌 기억뿐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역사라도 좀 공부하고 가볼걸 하지만, 다시 가라면 또 이렇게 여유롭게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며 여행하지 싶다. 


한국에는 아직 프랜차이즈 카페가 대부분이었다면 밀라노에는 다양한 공간의 카페들이 존재했다. 성당이라면 성당과 다른 건물 사이의 공간을 리모델링해서 사이 공간에 미사를 보는 사람들을 위한 카페가 있다던가 말로 설명하면 애매하지 그지없다. 그저 공간을 만들어서 음료를 파는 공간 같지만 원래 그 공간의 주인을 잊어버리지 않으면서 또 카페의 분위기를 혼합해 창출해내는 특이한 분위기이다. 


이 공간은 옷을 파는 매장이었지만 딱히 또 의류매장은 아니었다. 예술가들이 자주 들락거리는 듯한 장소였고 많이 여유로웠다. 가게라고 해서 붐비거나 음료를 마시기에 부담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쇼핑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닌 미묘한 공간.


밀라노는 카페와 식사를 해결하고 두오모 성당은 혹시 아쉬울까 봐 사진을 남겨주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BENEZIA

가면의 원산지, 베네치아

베네치아는 이미 많이 알려져 있기에 설명이 더 필요할까 싶지만, 그래도 그 분위기만큼은 정말 계속 이야기하고 싶은 멋진 곳이다. 비록 수많은 관광객 때문에 오염되고 주민들이 많이 떠나 텅 빈 건물들이 즐비하지만 그 매력을 지우지 못하는 곳. 베네치아. 최근에는 사라진 인파 덕에 돌고래까지 출몰한다고 하니 더 멋진 곳이 되어있지 않을까. 


베네치아에는 가면이 유명하다. 가면무도회에서 쓰던 가면들. 갖가지 모양과 색으로 눈을 현혹한다. 눈만 가리는 매혹적인 가면, 코를 길쭉하게 빼서 광대들이 주로 쓰던 가면, 얼굴 전체를 가리는 가면, 여행 당시 미국에서 일어나는 월가 시위 때 사용되던 가이 포크스의 가면도 찾아볼 수 있었다. 


검은색 털이 달린 가면을 사서 집으로 가지고 왔다. 도저히 쓸모는 없지만 왠지 가지고 있으면 가면무도회에 참석할 일이 생길 것만 같은 느낌이 종종 든다. 한 때 클래식을 들으며 샹들리에가 별처럼 반짝이는 궁전에서 무도회를 열던 상상을 하곤 했다. 무도회에 가던 여인들은 가면을 쓰고 꽉 조이는 코르셋을 입으며 설레곤 했을까? Probably.





BRURANO


조금은 다른 뷰를 가지고 있는 나는 어쩌면 제목 없고 의미 없는 그저 색감이 좋으면 사진을 찍었다. 


어쩌면 같은 사다리, 같은 벽일지라도 다른 나라와는 감성이 이리도 다를까. 특히나 회색빛 한국 건물들을 보며 많이 느낀다. 촌스럽다고 느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조금은 색이 있는 삶을 지자체에서 제공해주면 참 좋을 텐데.


다들 좋아하는 부라노 섬에 도착하면 우리를 환영하고 있는 아이스크림가게. 

부라노는 색이 알록달록하고 예쁘기로 유명한데, 이는 어부들이 집에 돌아올 때 작은 섬의 특성상 안개가 자욱하여 집을 찾을 때를 위해서 튀는 색으로 집을 칠했다고 한다. 


날이 꾸덕해도 꾸덕한 대로 예쁜 부라노 섬의 골목, 집들. 주민들은 기웃기웃 집 안까지 구경하려는 관광객이 성가신 듯 보였지만 너무 예쁜 꽃에는 벌레들이 꼬이기 마련이라던가... 사실 섬이 너무 작아 한 바퀴 도는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멋진 사진들을 남기기에 너무 좋은 부라노 섬. 날이 좋을 때는 부라노로-!



MURANO

무라노 섬은 유리공예가 유명한 곳이다. 직접 유리공예를 하는 장인의 솜씨를 보았으면 좋았겠지만 그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것도 충분하였다. 


엄마가 어렸을 때부터 크리스털이나 유리로 공예된 장식품을 좋아했었는데 그 원산지가 이 곳이라니, 어릴 때 추억을 함께 끄집어내어 마음껏 감상을 했다. 


굳이 저런 것 까지 유리로 만들 필요가 있을까 하는 나의 실용위주의 삶의 생각 습관이 감상하는 중간중간 많은 방해를 하긴 했지만, 그래도 뭐 여유가 넘친다면, 유리공예를 사랑한다면 천국이었을 듯한 무라노 섬. 

아니나 다를까 몇 년뒤, 엄마가 후에 사촌동생과 여행을 갔다가 아기자기 한 기념품들을 사 오셨다. 


여행을 다닐 때 시간이 남는다면 다른 관광객들의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골목골목도 샅샅이 구경해보기를 추천한다. 


무언가를 보기 위해서라기보다 그저 산책을 하듯 여유를 가지고 흙이나 모래 알갱이를 만지며 그 느낌을 느끼듯, 그 골목골목에는 역사를 공부하지 않아도, 현지인들의 설명 없이도, 어느 정도 그들의 삶이 어땟을지 보여주는 많은 것들이 나를 마중 나와 있다. 


알고 가면 좋겠지만, 서민의 삶을 기록하는 역사가 있던가. 그런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는 역사에 보이지 않던 대다수의 삶이 있다. 






BACK TO BENEZIA

해수면의 상승으로 저녁이 되면 섬이 물에 잠긴다. 깊이는 아니지만 발이 충분히 젖을 정도로 물이 차기 때문에 저녁이 되면 저기 쌓여있는 다리가 반 정도 잘린 식탁 같은 발 받침대로 길을 만들어낸다. 안타깝긴 하지만 막상 베니스의 광장에 물이 어느 정도 고여 하늘거울이 연출되는 모습을 저녁에 보고 있자면 이 섬에 살지 않는 이방인은 그게 꼭 나쁘지만은 않다. 


첫 방문 때는 아무것도 몰라 밀라노에 숙소를 두고 베네치아를 왕복했지만, 그다음 여행은 베네치아만을 위해 여행을 갔다. 밤에 보는 한적한 베네치아는 그 매력이 배가 된다. 코로나 사태가 끝나고 안전한 상황이 와 여행을 다닐 수 있다면, 만약 내가 남자이고 사랑하는 꼭 내 평생을 함께하고 싶은 여인이 있다면, 그리고 세상 최강의 로맨스를 선사하고 싶다면 어두운 베니스의 광장에서 할 것이다. (다 가정이기에 쉽게 말하기.)


그리고는 다음 날 일어나 (그 여인은 이 분위기에서 절대 NO를 하지 못하였을 것이므로) 앞으로의 행복한 미래를 구름이 둥실둥실 떠서 더욱더 환상적인 바다 뷰를 보며 그릴 것이다. 그 여인은 나에게 푹 빠지겠지. 후에 싸울 일이 있더라도, 이 추억이 그분을 한번 삭히기에 충분하겠지.









비가 오더라도 잠시 굴다리 밑에 숨어 비 오는 광경을 지켜보며 행복할 수 있는 베니스 여행. 사실 그 안에 좋은 기억과 안 좋은 기억이 다 있지만 베니스라는 큰 풍경에 가려져 크게 의미 있지 않을 정도로 베니스는 눈을 즐겁게 해주는 장소였다. 

혼자 가도 좋을 것 같은 베니스. 

막상 혼자 가면 이 터져 나오는 감성을 어찌하지 못해 사람이 그리울 베니스. 





나는 이렇게 오늘 사진을 뒤지고 글을 쓰며 추억을 상기하여 한번 더 베니스에 여행을 다녀왔다. 


[이 정도면 베니스 예찬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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