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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Nov 21. 2021

나의 인생시계

잘 살고 있다.

이제 독일어를 배우기 시작해서 책방을 지나가다 책의 제목 정도 눈에 좀 들어오는 그 시기에 책방에서 우연히 눈에 띈 엽서에 써진 한 문장에 이끌렸다.


아직도 보관하고 있다.

"Wer zu spät kommt, muss nicht warten."

"너무 늦게 온 사람은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어느 정도는 희망적인 그 문장이 담긴 엽서를 들고 카운터로 갔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는 19세들에게는 1년의 재수 기간도 굉장히 뒤처진다고 느껴지는 그 시기에 나는 거진 3-4년을 뒤에서 출발선을 끊었다. 발선도 저 뒤인데 달리는 것조차 길을 여러 번 잃어서 여기저기 헤매다 다시 제 루트를 찾기 일쑤였다. 여느 유학생과는 다르게 10년 동안 5개의 도시에서 거주했다고 하면 물리적인 시각에서도 얼마나 20대에 헤매었는지 알 수 있을까. 


20대의 일반적인 목표를 이루는 것들이 지연되는 나에게 엄마의 "지금 겪는 그 시간이 나중에 다 도움이 될 것이다"라는 말은 사실 천둥벌거숭이의 20살 초반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그 말을 들은 게 20살 초반이었지만 20살 후반까지도 그 말은 그저 엄마가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는 딸에게 해줄 수 있는 위로라고 밖에는 생각되지 않았다.


첫 시작부터가 주변과 비교해 "너무" 늦었고 그 시간을 단축하기에는 역량도 부족했기에 언제나 늦은 출발 그대로 항상 뒤떨어져 인생을 살아가는 느낌이었다. 뒤쳐진 기간이 계속될수록 조바심이 점점 커졌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니라는 전반적인 인생 태도에도 불구하고 "나는 왜 일반적인 기대를 따라 수동적으로 살지 않아서 스스로를 힘들게 했을까"까지 생각이 들기도 했다. 


요새는 인생은 개인의 것이고 나만의 시간은 남과는 비교할 수 없다고는 하지만 80년대 생의 고리타분한 편인 나의 머리에는 그래도 완벽히 혼자만의 삶의 속도에 만족하기에는 주변과 비교하는 습관과 환경이 있었다.

게다가 나의 인생 목표 자체가 남들과는 다르게 특별하게 살고 싶다거나 나만의 꿈이 있던 게 아니었던지라 그저 환경과 비슷하게 평범하게 살고 싶은 사람 중에 하나였기에 그 뒤늦음이 꽤나 괴로웠다.


20대에는 말이다.



인생의 제일 큰 반환점이라고 하는 결혼과 출산이 이루어진 30대의 삶에는 나름 방황하던 시간을 겪어낸 자로써 그리고 아마도 해외에서 어쩔 수 없이 나만의 삶을 겪어내야 했던 사람인 내가 보기에는 [아직 30대뿐이지만] 인생의 모든 시간은 사실 다 필요했다. 


이전에는 "옛날의 나로 돌아간다면", 혹은 "옛날의 나를 만난다면 하고 싶은 말" 등을 종종 생각했던 적도 있었다. 지금 와서 보면 굳이 돌아가서 스스로 미래에서 온 꼰대 역할을 하고 싶지 않다. 서른 이후로 가정을 이루고 누군가를 양육해야 하는 행복한 책임감이 덤으로 주어지는 이 시기에는 되려 생각 없이 놀았고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의 능력이 어디쯤인지 세상과 부딪히면서 보냈던 20대의 시간이 저어어어어어어언혀 낭비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시간에 지금처럼 책임감과 의무감으로 똘똘 뭉쳐 살아냈더라면 오히려 지금쯤 나라는 사람에게는 번아웃이 왔을지도 모르겠다.


허투루 쓴 시간, 우울했던 시간, 힘들었던 그 모든 시간도 하나도 필요하지 않은 시간은 없었다. 다른 사람의 인생에는 필요 없던 시간일 수 있어도 적어도 내게는 내 인생의 모든 요소가 필요했었을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와중에 배운 능력이나 정신력 또는 경험은 현재의 나의 삶에 어쩌면 그렇게 하나도 빠짐없이 내가 다 실패했다고 생각했던 경험에서 고대로 발라낸 것같이 지금 와서 필요한 경험이 많은지.


망아지에게는 날뛰다 생기는 상처가 있어야 할 이유가 있다.




시간표에 맞게 아주 인생 평탄하고 순조롭게 대학과 사회 초년생을 겪어내며 차근차근 쌓아오며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에 오기보다는 나는 실컷 날뛰다가 뒤늦게 헐레벌떡 이 자리를 찾아왔다고 생각하니 나는 역시 후자가 맞는 성향이었다. 다시 과거도 돌아가도 나는 또 그렇게 했을 것이다. 그래서 나의 성향에게는, 나에게는 나의 모든 시간들은 다 필요했던 시간들이었다.


Late Bloomer. 늦게 피는 꽃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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