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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Apr 22. 2020

프랑스에서 교환학기 나기

Toulouse 경험기

독일 대학생들은 1년이 지나고 나면 Orientierungsprüfung이라고 기간 내에 학점이수를 어느 정도 한 상태여야 계속해서 공부를 할 자격이 주어진다. 기간 내에 정해진 credit을 다 이수하지 못하면 학생 자격이 박탈된다. 성적과 관계없이 학점 이수만 하면 OP는 패스하기에 큰 문제는 없다만 졸업하려면 이런저런 조건이 참 많기도 하다. 2014년에는 강제로 교환학생을 또 가게 되어있는 만하임 대학교... 이미 해외에 나와 전전긍긍하다 이 생활이 안정됨에 기쁨을 느끼는 나였기에 다시 어디론가 이동하고 싶지 않았지만 강제적인 교환학기였기에 나라와 대학을 골라야 했다. 이 기회를 틈타 한국에서 대학문화도 알아보고 본국에 계시는 부모님, 친구들도 만나서 신나게 놀다 올 생각으로 한국 대학을 지원란 맨 위에 적어냈지만 교환학생의 의미를 크게 벗어나는 행위였기 때문이었을까, 나는 될 거라 생각도 못한 맨 하단에 적어낸 Toulouse라는 프랑스 도시로 교환학기는 정해졌다.


갑자기 독일인들의 정리하는 습관? 에 대해서 불현듯 기억이 났는데 아마 교환학생으로 간 뚤루즈 대학원에서 다른 나라로 유학 갔던 독일인을 만나자마자 독일인임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대학 수준이나 레벨을 맞춰서 교환학기의 시험이 반영되기 때문에 대학원으로 가게 되었다.) 전에도 언급했듯이 독일인들은 전반적으로 다른 서양 민족(너무 갔나)에 비해 꽤나 깔끔한 편이고 정리정돈이 어느 정도 지독하게 잘 되어있는 편이다. 예를 들면 일반학생의 파일 말이다. 절대로 클립이나 스테이플러로 찍은 A4용지 말 들고 다니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내 책장에도 보이는 시커먼 링으로 된 파일들에 과목별로 정리를 해서 날짜별로 또 하나하나 누구라도 말만 하면 찾을 수 있게 정리가 되어있다. 너무 큰 파일이라 안 들고 다닐 것 같지만 굳이 굳이 핸드 백안에, 가방 안에 쑤셔 넣고 다니거나 얇은 파일로 넣고 다니다가 나중에 정리를 한다.


나의 책장


어쨌든, 프랑스 대학을 한 군데밖에 안 다녔기에 일반화는 절대적으로 할 수 없으나 내가 간 뚤루즈 대학원은 전반적으로 정리가 하나도 되지 않은 느낌이었다. 독일에 반해 수업내용이나 개관, 스크립트가 안 올라오는 경우도 허다하고 수업시간에도 화이트보드에 선생님이 쓰는 글씨를 받아 적는 식의, 어찌 보면 한국에서 중학교 때 다니던 학원에 다니는 느낌이었달까. 시험도 주관식보다는 개관식이었으며 20문제 안으로 문항수도 2개에서 4개사이었다. (독일 통계학 객관식 시험은 100문제였는데.... 너무 다르잖아...) 사실 그때 생각으로는 돈만 있었다면 이런 사립대학에 쉽게 쉽게 다닐 텐데..라는 생각이 많이 들긴 했었다.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내용부터 시험 난이도까지 너무 쉬운 느낌이 있었다. [제 프랑스 대학 경험은 뚤루즈에 제한되어 있습니다.]

생산관리 수업

아니면 독일 대학이 너무 혹독한 것이 아닐지 생각도 해본다. 하긴, 아주 잠깐이었지만 수학과 생이었을 때도 MIT에서 올라오는 강의를 들으며 수업을 이해하는 것이 더 편했고 (언어가 더 쉬웠던 점도 있지만 조금 더 쉽게 가르치는 부분도 있었다.) 만하임 대학생들은 사실 교환학생을 나가서 평균점수를 엄청나게 올려온다. 한국에 교환학생으로 나갔던 친구들도 거의 1.0 수준을 받아왔기에 6학기 중 1 학기는 A+로 떡칠을 해 온 것이다. [독일은 성적이 상위 1.0부터 1.3, 1.7, 2.0 순서로 가고 마지막은 겨우 패스인 4.0, Fail은 5.0이다.]. 독일 대학이 어렵다는 것이 독일 대학 수준이 높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물론 양 자체가 비교가 안될 정도로 방대한 부분도 있지만 그만큼 학생에게 이해시키고 지식을 습득시키지 못한다는 이야기 일 수도 있다.


프랑스 교환학기는 학교를 떠나서 아주 다른 삶을 경험할 수 있었다. 일단, 따스한 햇살부터 자유로운 영혼의 프랑스인들. 사실 자연적인 요소를 제하고는 나와는 그다지 맞지 않았다. 정돈되지 않은 거리며 자유로운 영혼의 사람들이 예술적이고 낙천적으로 보일 수 있으나 내 눈에는 그저 지저분한 삶으로 다가왔다. 파리에서의 2개월간의 인턴경험과, 잠시라도 거주하는 입장에서 느끼는 프랑스는 또 달랐다. 파리에서는 다 자유롭고 그저 잠시 여행하는 느낌으로 이리저리 둘러보고 경험할 것들이 많아 잠시도 쉴 시간이 없었다. 지저분한 모습들을 보아도 다른 유명 관광지의 건축물에 현혹되어 금세 잊히기 마련이었다.


내가 처음 머물게 된 집주인 여자는 백인이 아니었다. 프랑스에도 다양한 인종이 사는 만큼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백인의 미녀가 프랑스인이 아닐 수도 있다. 흑인 계열의 여자였는데 살짝 집시 같은 느낌의 여자, 그녀는 나와 또래인 딸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다른 남자와 낳은 여동생, 그리고 또 다른 남자와 낳은 아들, 또 다른 남자와 낳은 아이, 또 다른 아이.. 총 7명을  각기 다른 남자와 낳은 엄마였는데도 새로운 남자와 데이트를 한다며 매주 목요일마다 화장을 하고 온 집안에 향수를 뿌려댔었다. 그 집의 벽의 얇았고 목요일마다 듣기 싫은 소리를 듣느라 심령이 상했다. 언젠가 장을 보러 같이 갔었는데 프랑스의 뒷골목에서 몰래몰래 싸게 파는 담배를 구매하는 모습, 그리고 그 거리에 널브러져 있던 사람들, 돌아오는 길에 보았던 거지들과 퀴퀴한 냄새 등은 말 그대로 죄악의 도시를 연상케 하였다.


더 이상은 버틸 수 없어 Airbnb에서 조금 더 비싸게 집을 알아봤다. 역시 나의 환경은 내가 바꾸는 것이던가. 조금은 더 정돈된 듯한 모습, 작가의 포스를 풀풀 풍기는 어느 여성의 집 방 한 칸을 쓰게 되었다. 여전히 골목의 퀴퀴한 냄새나 거지들은 보였지만 내가 머무는 공간이 정돈되고 나니 더 이상 신경에 거슬리지 않았다.


내 침대에서 떠나지 않던 두 번째 집 고양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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