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는 대학이 Universität, Hochschule, Fachhochshule로 크게 나뉘어 있다. 크게 나누자면, Uni는 학문에 중심을 두고 공부 가르치고 예를 들면 한국에서 대부분 알고 있는 유명한 독일의 공과대학이거나 의과대, 전문화된 유명대학들이다. Hochshule는 같은 대학의 개념이지만 Uni보다는 한 단계 낮은? 진입장벽이 있다. 예를 들면 독일에서 시험을 3번 낙제하면 그 과는 평생 독일에서 다시 공부할 수 없게 되는데 Uni에서 실패를 했을 경우에는 Hochschule에 다시 지원해서 공부를 하는 것이 가능하나, Hochschule에서 실패하는 경우 Uni로 들어가서 다시 공부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하지만 수준이 더 낮다고 하기에는 조금 애매하다. Fachhochschule는 그야말로 전문대학이다. 주로 디자인 계열이 많다. 나도 사실 현지인이 아니기에 더 상세하게는 알 수 없음을 자백하고, 이만큼이 내가 아는 선이다.
만하임에 처음 들어갔을 때의 인상은 그저 성 안에 들어온 느낌이었다. 한국 대학을 다녀보지 못했기에 현실의 한국 대학과 비교는 불가능하고, 그저 내 환상 속에 존재했던 한국의 대학과 비교를 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비슷한 것 같았다. Orientation을 하던 Aula 강의실은 생각보다 아날로그 방식이었으나 나머지 학교 전반적으로는 독일에 있는 것 같지 않은 테크놀로지와 최신 시스템이 많이 들어와 있었다. 경영대인지라 많은 대기업에서 스폰서를 받고 있는 덕도 있었다. 도서관 램프, 의자 시설 등이 다 최신식이어서 일단 그 부분이 마음에 들었다. 도서관과 친하지 않은 삶을 살아왔지만, 앞으로 이 도서관에 시험기간마다 12시까지 앉아있어야 하는 복선이었을까...
처음 동아리는 MaMUN이라는 UN 활동을 지지하고 예행연습을 하는 동아리와, AKB라는 Arbeitskreis Börse라는 주로 투자은행과 연계되어 활동하는 동아리에 들었다. 역시 네임벨류가 큰 것인지, 다른 학교에서는 찾아가야 볼 수 있던 JP Morgan, Credit Suisse, Goldman Sachs, Deutsch Bank 등등 이름만 대면 아는 투자은행에서 찾아와서 워크숍을 해주고, 인사과 및 현직 인사들과 네트워킹 이벤트를 매주 열었다. 마치 학교에 입학한 것이 이미 취업을 한 듯한 착각으로 다가와 첫 1학기는 내내 설레기만 했다.
수업 언어는 50%는 영어, 50%는 독일어였다. IFRS 같은 경우는 영어로 수업하고, 독일세법이나 경영윤리 등은 독일어로 수업되었다. 마케팅 같은 경우 초반은 독일어로, 마지막 학기는 영어로 수업하는 등 반반에 어쩔 수 없이 나누는 듯한 부분도 있었다. 경제학 같은 경우는 영어수업과 독어 수업이 병행되어 선택할 수 있었다. 수업시간에는 자유롭게(?) 하지만 어느 정도 눈치껏 먹거나 마실 수 있다. 물은 필수적이고 가끔 빵을 사 와 먹으며 수업을 들어도 아무렇지도 않은 분위기다. 수업시간에는 어느 정도 서로 떠들며 토론해도 되고 들어오고 나가는 것이 자유로우며 출석체크는 하지 않는다.
수업은 보통 대강의실에서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열리고 수업 이외에 Übung과 Tutorial시간을 미리 신청하여 들어야 한다. 어쩌면 수업보다 더 중요한 시간들이기에 절대 빠질 수 없는 시간들이다. 이 시간에 튜터와 함께 문제를 풀거나 더 적극적으로 질문 및 토론을 한다. 몇몇 수업은 Übung시간에 필수로 발표를 해야 하는 과목들이 있다. 마케팅에서는 그룹 케이스 스터디 발표나 금융학에서는 문제풀이 발표가 있어야 시험을 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지기도 했다.
경제학 수업
필수적으로 해야 하는 몇몇 과제를 빼고는 전반적으로 학교를 아예 출석하지 않아도 전혀 문제 되지 않는 시스템이기에 수업이 조금이라도 쉽거나 지루하면 학생들이 일어서서 나가는 경우도 많고, 다음 시간부터는 학생 수가 3분의 1로 줄기도 했다. 하지만 수업이 절대적이라 평가가 되면 강의실 자리가 모자라도 계단에 앉아서라도 수업을 듣는 모습이 펼쳐진다. 제일 극과 극이었던 수업은 내 기억에 회계학 수업과 Human Resource수업이었다. 회계 강의는 학생들이 늦지도 않고 계단에 앉아서라도 열심히 필기를 하고 수업시간에 숨소리도 내지 않는 듯했다. HR강의는 일단 수업 시작시간이 되어도 카페테리아에 가서 커피 한잔 사서 느긋히 들어와 남는 여러 자리에 앉아 친구와 chitchat 또는 SNS를 하다가 가끔 필요한 필기를 하고는 끝날 때 즈음에 미리 나가는 학생들이 많았다. (무음 모드 잊고 친구 권유로 캔디 크러시 깔다가 소리 나서 교수와 정확하게 눈 맞았던 1인.)
사실 회계학과 같이 숨소리도 안 내고 집중하는 수업은 거의 없다. 회계학 말고 상법, 민법 정도 더 있었을까. 초반에는 그럴지라도 중간이 되기도 전에 수업에 들어오는 수는 반이 떨어져 나간다. 사실 이미 스크립트가 미리 나가 있는 상태이고 교과서도 지정되어 있는 상태에 Übung과 Tutorial이 보충하고 있으니 수업에 집중하기는 보통 열정으로는 힘들기도 했다. 그리하여 수업시간에는 가끔 교수들이 조용히 해달라며 사정하는 경우도 생긴다. 신기했던 것은 아무도 학생들을 쫓아내지 않았다. 얼굴이 벌게질 정도로 열이 받는다고 화를 내거나 수업을 중단하는 경우도 없었다. 단 한번 권유의 말투로 "내 수업이 필요 없다면 나가도 좋다, 그저 다른 학생이 수업 듣는 것을 방해 말아달라."가 전부였다.
의아한 부분은 도서실에서도 독일 20대는 귓속말이 불가능한 건지 나름 조용히 말한다고 하는 건데도 꽤나 크게 말하며 계속해서 이야기를 하고 떠들어도 아무도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다. 거슬리지 않는 건지, 아니면 그나마 존중을 해주는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한 번은 아시안 학생 한 명이 눈알이 돌아갈 정도로 흘겨보는 것을 보고는 푸훗하고 웃었던 학생도 있었다. 정말 신경 안 쓴다.
시험은 alte Klausur라고 족보가 존재하는 과목들이 몇몇 있다. 이 족보는 공식적으로 학교 과 사이트에 제공된다. 예를 들면 통계학, 금융수학, 경제학 등등이다. 초반에 이 족보를 몰라서 시험을 폭망 하곤 했는데 족보는 필수였다.. 문제풀이만이 살길인 수학 관련 과목들.. 의 특성과 다르게 언어적인 부분으로 경영윤리와 같은 과목은 내 숨통을 죄는 과목 중 하나였다. 윤리 부분을 한국어로도 배운 적이 별로 없지만, 일단 독일어로 원론부터 들어가자니 사전 찾느라 시간이 다 갔고 단어 뜻을 알아도 문장에 취합해서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또한 Uni자체가 말했듯이 실무적인 부분보다는 학문적인 부분을 중점에 두고 가르치는지라 독일어로 이해하기도 힘들었는데 또 외워서 시험지에 쓰자니 정말 피하고 싶은 몇 과목이 있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만큼 신경을 썼던 탓인지 오히려 내가 자신 있게 봤던 매니지먼트 등 영어로 이해하기 쉬웠던 과목보다 괜찮은 점수를 받았다. 역시 노력이 99%인가.
공부를 방해하던 젤리 녀석
또 하나 내가 봐오던, 알아오던 경쟁시스템과 다른 부분은 공유시스템이었다. 사실 외국인 전형으로 들어간 나와는 다르게 만하임 대학에 입학한 현지 독일인들은 상위 1%의 학생들이다. 공부를 잘하는 학생의 이미지는 보통 자기만 알고, 경쟁이 꽤나 심하며 본인의 공부비법? 은 공유 안 하지 않았던가? 독일 학생들의 공부방법은 꽤나 여유로웠다. 본인이 공부해서 정리한 노트를 만하임 대학 페북 게시판에 공유하거나, 또 Übung이나 Tutorial시간을 빼먹은 학생들을 위해 본인들의 노트를 올려주기도 했다. 가끔은 시험 예상문제도 공유했다. 절대평가가 없어서 일수도 있겠지만 노파심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은 여유로운 자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