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미 Feb 17. 2020

한인들의 뒷골목 이야기

독일에 SOME 한국인들이요.

이번에는 독일에서 내가 기피했던 세상에 대해서, 그리고 해외의 정보를 받아들일 때에 잘 들리지 않는 뒷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물론 모두의 이야기는 아니고, 소수의 몇몇의 이야기일 것이다. 


사실 내가 개인적으로 접했던 독일 유학생들은 미국 유학생들과 사뭇 달랐다. 미국 유학생들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고, 집에서 전폭적으로 지원해주는 경제력으로 미국 유학길을 떠난 학생들과는 조금 달리 독일에 오는 꽤나 많은 유학생들은 정말 열정을 가지고, 넉넉지 않은 형편이지만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털어 유학길에 오르는 학생들을 많이 봐왔다. 와서도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업을 이루고 보통은 학업을 마친 후 독일에 거주하는 것을 희망하며 왔기에 내가 보기에 한국인들은 참으로 부지런하고 건전한 생활을 한다고 생각해왔다. 


독일도 지역별로 분위기가 많이 다르긴 한데, 내가 살아봤던 5개 도시 중에 프랑크프루트는 유난히 다른 지역보다는 더 글로벌하고 외국인들이 이미 그들의 사회를 많이 이루어놓은 곳이었다. 회사들이 대부분 프랑크프루트에 유럽지사를 설립하기 때문에 많은 주재원들, 그들의 가족들, 이민자들, 유학생들, 지나가는 여행객들이 한데 어우러져 한국사회를 형성해 놓은 곳이었다. 내 독일 삶의 마지막 도시였는데, 살던 중 내가 본 제일 퇴폐적인 곳이라고 기억한다. 


사실 여자인 나로서는 쉽게 들어오지 않는 이런 정보들은 남편을 통해 많이 많이 들어오게 되었고 몇몇의 경험을 통해 확인하게 되었다. 남편은 운이 좋아서인지 사원 때부터 주재원으로 발령을 나와 독일에서 생활하게 되었는데 학생으로 독일에서 시간을 보낸 나와는 너무나도 다른 모습들을 보아왔다고 했다. 




남편은 프랑크프루트의 볼링동호회에서 알게 되었다. 인터넷에서 사람을 만나는 모임을 기피하던 나였지만 아무도 없는 5번째 도시에 떨어지자니 정말이지 외로움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이제 학교도 끝났겠다 학생들은 이도시 저 도시로 빠져나가고 나의 목적지는 프랑크프루트였다. 베를린 리포트라는 독일 내 한인 홈페이지에서 이것저것 찾아보다 볼링동호회를 알게 되었고, 할 일도, 만날 사람도 없는 나는 그 동호회를 나가게 되었다. 


남편은 프랑크프루트에서 30분가량 떨어진 비스바덴이라는 동네에 살았다. 동호회에서 가끔 회원들이 술 한잔 하고 피곤한데 자고 가라고 권유를 해도 손사래를 치며 정색하는 표정으로 "내 집 있는데 왜 남에 집에서 자냐"며 유난을 떨었다. 여성도 아니고 남성인데도 곁을 내어주지 않았다. 나와 인연이 맺어진 것도 우습지만 남편이 시킨 홍합탕에 내가 침 바른 숟가락을 넣어서이다. 정말 밉상이라며 다시 시킨 홍합탕에도 내가 1 빠로 숟가락을 꽂았기에 어쩌면 우리의 인연이 시작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날따라 맛있었던 홍합탕)


그렇게 연애전에 떨었던 이런저런 유난스러움 덕분에 남편이 퇴폐적인 사실을 전달할 때도 "너도 그런 놈 일지도"라는 의심은 많이 없었다. 주재원들은 가족을 데리고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혼자 나오는 경우도 꽤 있었다. 남편은 주재원들 사이에서 공통적으로 다 알고 있는 빨간 집(창녀촌)이며, 투잡으로 애인대행을 하며 돈을 버는 독일에 한국 여성들 등등 내가 듣기 싫은 어두운 이야기를 해댔다. 


"오빠만 그런 세상에서 사는 거야!, 오빠가 그런데 관심이 있으니까 그런 것들만 보이는 거라고!"

"제발 네가 보고 싶은 아름다운 세상만 보지 마, 조심하라고 알려주는 거야!"


이 주제로 연애기간 한참 싸웠었다. 




하지만 연애가 한참 무르익어갈 때 즈음, 한국계 독일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던 나는 맞은편에 3살 차이 나는 주임과 같은 방을 배정받았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남편과 만난 이야기, 거기서 맺어지는 연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가 볼링동호회 회장에 대해서 이야기가 나왔다. 그는 일본계 회사에 근무하다 혼자서 주재원으로 나온 사람이었는데 동호회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않아 내게 고백을 하며 꽤나 불편하게 굴었다. 나이 차이가 딱 봐도 10살 정도 나는 그 사람은 지나가다 주웠다며 스와로브스키 목걸이 세트를 사주질 않나, 매일같이 잘 들어갔냐며 남자 친구 행세를 하다, 불편하다며 내게 세찬 거절을 당하고도 받아들이지 못하며 장문의 문자를 보내왔다. "학생이니까 여행 많이 못해봤을 거 아니에요, 내가 경비 다 댈 테니 나랑 여행가요" 지금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나중에 거기에서 만난 한 친구와 캐어보니 볼링 동호회에 가입을 신청한 젊은 남자들은 대부분 거절당하고, 젊은 여자들 위주로 형성을 했던 것 같다.


주임은 그를 알고 있었다. 그 총각행세를 하던 새끼는 2016년 2월, 동호회가 갓 시작해서 내게 추근덕 거리던 그 기간에 한국에서 둘째가 태어난 애둘아빠였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잠시나마 그래도 사람은 좋은 사람일 거라며, 그래도 나를 진심으로 좋아하다 상처 받았으니 너무 대차게 행동하지 않았던 나의 배려는 개똥이 되었다. 물론 남편을 만나기 전이지만 미리 경계를 하고 있었다면 뺨이라도 얼굴이 떨어져 갈 정도로 후려쳐줄 수 있었을 텐데. 한동안 톡을 다 캡처해서 한인 페이지에 뿌릴까, 와이프에게 알려줄까 고민을 했었다. 어떻게 매장을 시켜줄까.


그런데, 

한인 페이지에 뿌리기에는 남편 말에 의하면 다수가 그런 삶을 살고 있을 수도 있었고, 와이프에게 알려주기에는 이제 막 애 출산하고 고생하고 있는 그 여자는 무슨 날벼락일까 싶었다. 그보다 내 남편이 될 사람에게 내가 그런 복수를 하는 동안에 받을 정신적 스트레스를 입히기 싫었다. 그 새끼는 내 남편 덕에 살았다.  




내 남편은 이따금씩 충격적인 이야기를 물고 왔다. 

"그 사람 있잖아! 너랑 또래인 여자랑 살림 차린 남자, 그 사람 한국에 중학생 아들이 있데!"

"본사에서 출장나 왔는데 주변 주재원들이 좋은데 안 데려가고 뭐하냐고 나한테 뭐라고 하더라, XX 더러워."


하긴, 

기억해보니 통역할 때도 한번 그런 일이 있긴 했다. 보통 통역을 구하는 한국 사장님들은 굉장히 젠틀하고 친절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는데, 한 번은 정말 발로 뛰어서 자수성가 한 사장이 있었다. 그 사장은 처음부터 달랐다. 일단 손님이 오니, 나보고 커피를 타오라고 했다. 햐- 커피 타오라는 게 미생에만 나오는 게 아니었구나. 그나마 그 아들이 본인 슬쩍 커피를 미리 타 오곤 해서 중간에 대 들일은 없어졌었다. 하루는 사장은 안 오고 아들만 왔던 날이 있다. 


"사장님은요?"

"아, 어제 술 먹고 좋은 데 갔다 오신다고 오늘 좀 늦으실 거야."

좋은데? 좋은데? 뭐 어디 여행 갔다는 소리지? 아들 입에서 들을 소리는 아닌 것 같았다. 내 생각이 꽤나 부정적으로 변했구나 싶어서 그저 좋게 좋게 생각하고 넘어가려는 찰나 사장이 등장했다. 바쁘게 오전을 보내고 오후쯤 한가해지니 사장이 슬슬 말을 걸어왔다.


"여자들은 유학 생활하면 안 돼, 그 뭐야 여기 그 술집에도 학생들 술집 알바 많이 하던데, 2차 간다더라고"

옆에 그나마 그 사장에 비해 수준이 월등히 높아 보이는 다른 사장님이 "아유, 독일애들은 그런 애들 많이 없어요, 게다가 이 학생은 금융 쪽으로 간다잖아요. 공부 엄청 할 텐데" 이 한마디 안 받아쳤으면 싸울뻔했다. 


그리고 이내 생각이 들었다. 정말 그런 술집이 있다고? 독일에?

응. 있었다. 통역 알바가 끝나고 중개해주신 사장님과 같이 다른 한국인 혼혈 동생을 만나고 확인해버렸다. 그 동생이 다 같이 있는 자리에서 자꾸 "누나, 완전 충격적인 거 있었어."라며 계속해서 알려주는 바람에 내가 묻기도 전에 알게 되었다.


물론 독일이 남녀혼탕으로 여행 오는 남자들에게 뭐 필수 코스니 뭐니 우스개 소리를 들은 적도 있긴 하지만, 막상 독일 혼탕에 가면 그 건전한 분위기에 불결한 생각 따위는 사라지고는 한다고 생각했거니와, 불결함을 찾아 헤매는 이들에게는 건전한 곳들은 피해 다른 곳을 찾아가기 마련인가 보다. 


그 외에도 유랑이라는 싸이트에서 만나 유럽까지 여행을 와서 이성을 찾아 술 한잔 기울이고 낯선 남자의 방에, 여자의 방에서 하루 묵어가는 경우, 육체관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와이프를 두고 그런 만남을 찾아 즐기러가는 누군가 등..


어디 가나 건전하게 건강한 삶을 잘 사는 사람들이 있고, 유흥과 육체의 정욕을 쫒는 사람도 있지만. 

독일에도 창피한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냥한번꼰지르고싶었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희망이 나를 움직이게 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