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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Sep 16. 2022

엄마

엄마엄마

유학 가 있는 동안 엄마 생일, 아빠 생일을 챙겨드리지 못했던 미안함 때문일까, 한국에 들어오고 나서 주변 지인들이 부모님 생신에 여행도 보내드리고, 용돈도 많이 드리고 자식 노릇 톡톡히 하는 걸  보며 마음에 죄책감이 쌓였던 걸까,  나이가 들수록 부모님 생신만큼은 꼭 기분 좋게 해드리고 싶은 생각이 더 커졌다.


올해는 엄마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생크림 케이크 대신 떡 케이크를 주문하고, 아빠는 엄마가 좋아하는 장미꽃을 사 가지고 오기로 했다.



선물이고 이벤트고 살면서 못 받아봐서 그런지 그런 자그마한 이벤트에도 쉽게 감동하는 엄마.

엄마는 생일과는 무관하게 언제나처럼 가족들에게 음식을 차려주느라 부엌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오늘이라도 좀 쉬라고 다그치는데 엄마가 "원래 생일은 고생하는 날이잖아. 나오느라고."라고 하길래

무심코 "할머니가 고생했지 낳느라고."하고 말을 내뱉어 버렸다.

원래 고생하는 날이 아니니 좀 쉬라는 의미였는데 엄마는 곧 "그러니까 할머니가 참 고생 많았겠다.. 나도 엄마 살아있었으면 이렇게 해줬을 텐데.."라며 고개를 숙였다.


최근 들어 손주를 봐주면서 나와 아들이 노는 모습을 보면서 엄마 생각이 더 많이 난다고 하셨었다.

나이 드니까 자꾸 엄마 생각이 난다면서 이제 68세를 맞이한 할머니가 된 엄마도 엄마를 그리워하고 있었다.

가끔 엄마는 내게 엉기는 아들을 보면서 "엄마는 뭘까, 엄마는 그냥 참 좋아."라며 내게 말하곤 했었는데

나는 그 말이 꼭 엄마 됨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 같아 듣기 싫은 소리로 치부해버리곤 했었다.


하지만 엄마를 그리워하는 엄마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문득 엄마란 존재란 무엇일까를 생각하며

내가 나이가 들어 세상에 엄마가 없을 때를 생각해봤다.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참 허전했다. 우리 엄마는 유독 더 내게 푸근한 존재였다.

 싸우고 싫을 때도 있지만 그 존재 자체가 없는 것과는 다른 이야기였다.


오은영 박사의 부모는 아이의 우주라는 말이 생각났다.

우리 집에서는 부모를 종종 뿌리라고 불렀다.


나의 세상.

그중에서도 뭔가 더 따듯하고 내가 쏙- 들어갈 수 있는 편안한 공간.

엄마를 느끼는 대로 표현해보자면 그렇게 표현하면 될까,

게 중에 무언가 딱딱하고 곧아서 내가 세상 풍파에 휩쓸릴 때 잡고 일어설 수 있는 의지되는 무언가.

그건 아빠.



개인적으로는 언제나 나의 부모는 나에게 그랬다.

평상시에는 잔소리 많고 약간은 나랑 달라서 혼자 있고 싶고 해도, 이 세상에는 오래오래 나와 함께 계셨으면 좋겠다.


어릴 때도, 나이가 들어서도 보고싶은, 인간에게는 나를 세상에 태어나게 해 준 엄마 아빠라는 존재가 한 마디로 정의 내릴 수는 없어도 한 사람에게는 나를 감싸고 있는 세상 모든 것을 아우를 정도의 존재라는 것은 알겠다.


따듯한 뱃속 양수같은 엄마.


#우리엄마도엄마가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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