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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nfonia Feb 14. 2022

오슬로에서 일상 한 조각

2017년 오슬로의 봄  

2017. 3


같은 프로젝트를 하는 노르웨이 친구가 길을 걷다가 대뜸 눈을 살짝 감더니 이렇게 말했다.


I can smell spring!

봄이 오는 냄새가 느껴져


그녀는 대부분의 북유럽인들이 그러하듯 원어민에 가깝게 영어를 구사한다. 그래서 매우 시적인 표현이라 하겠다.

그륀네뤼까에 위치한 Galleri 69 앞에서, 봄을 고대하며.


당시 우리는 오슬로의 홍대인 그륀네뤼까(Grünerløkka)의 한 복판을 걷고 있었다. 나는 겨울 코트와 목도리를 두르고 있었고, 그녀 역시 두꺼운 파카를 입고 있었다. 여전히 눈은 몰래 온 손님처럼 왔다가 가고, 나는 며칠 전 방심하고 간 산에서 몇 번이나 빙판 트위스트를 췄다. 그럼에도 나도 그녀의 말에 웃으며 눈을 살며시 감았다. 살기가 어린것 같았던 바람은 온순해졌고, 찌푸린 하늘은 한층 관대해졌다.


3월 중순에도 근처 숲 속에 가면 빙판길이었다. 그래도 날이 점차 밝아진다는 사실에 감사하였다.


핀란드인들의 유머에는 날씨가 빠짐없이 등장하는데, 그중에는 여름 두 달을 위해 한 해를 견뎌 낸다는 말이 있다. 노르웨이 학우도 봄을 '기대' 한다는 표현을 썼다. 나라면 '고대'한다고 말했겠다. 매번 오는 세월과 그에 따른 변화를 내가 그토록 기대해본 적이 있던가. 햇빛 한 줌에 감사해하고, 낯선 새소리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 북유럽에서 봄을 맞이하는 방법이었다.




수영장에서 센터에 있는 학교로 가는 길


학생 할인으로 수영장을 약 3개월 동안 다녔었다. 자유수영으로 다녔는데 가끔 수업을 하는 아가들과 마주치곤 했다. 약 2미터 깊이의 수영장에 거북이등도 없이 몇 개의 길쭉한 튜브만 덩그러니 놓고 고작 5-7살 정도 된 애들을 풀어놓아서 매우 놀랐었다. 그보다 더 나를 놀라게 한 일은 수업이 끝날 무렵에 일어났다. 갑자기 수영장 안으로 천정에 키가 닿을 것 같이 커다란 사내들 대여섯 명이 들어왔다.  그들은 허리 반절을 접어 목이 꺾여라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아가들의 아버지들이었다.


순간 올림픽 수영장 저 멀리서 오빠를 지켜보던 엄마와 과자 한 봉다리 쥔 내가 그림처럼 떠올랐다. 나를 맡길 데는 없고, 선수용인 2미터 깊이의 풀에서 수영 강습을 받을 어린 아들의 모습은 지켜봐야겠고. 엄마와 나는 그렇게 종종 올림픽 수영장으로 갔었다. 키가 크고 건장한 노르딕 아버지들 그리고 158센티의 엄마, 그 둘의 상반된 이미지가 동동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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