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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nfonia Feb 22. 2022

핀란드에서 세 번째 여름

조금은 익숙해졌을까? 여전히 생경했던 핀란드의 여름

2019. 6


며칠 전 집 앞 공사장을 지나가는데 안전모를 쓴 이가 말을 걸었다.


"거긴 위험하니까 이쪽으로 걷는 게 좋을 거야"


낯선 이가 말을 거는  없는  동네에서 영어로 친절을 베푼 그가 고마웠다. 나는 고맙다는 말을 미소와 함께 실어 보냈. 그러자 그가 대뜸 어디서 왔냐 물었다. 자기는 모로코에서 왔단다. 대학  한국인 친구가 있었다고 했다. 대학교에서 역사를 전공했다고 덧붙였다. "지금은 보다시피 배관공이지만 말이야"라는 이 뒤따랐다.


내가 어떻게 반응할 새도 없이 그는 좋은 하루를 보내라는 말과 함께 공사장 안으로 사라졌다. 그가 내뱉은  문장이 서글퍼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펜스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작년 여름, 접시를 온종일 닦으며 잘 차려입은 직장인 무리를 바라보던 내가 떠올랐다. 그도 나도 무얼 감내하면서 이곳에 처절히 남아있는 걸까. 공사장을 지나 하늘을 보니 이제 시작한 핀란드의 여름이 생생했다. 이 하늘을 보고 싶어서 그토록 긴 겨울을 온몸으로 견뎌왔나 보다. 아무렇지 않게 웃고 말았다.




내가 살았던 집 바로 앞 산책길 - 학교 캠퍼스의 일부이기도 하다


바다로 둘러싸인 집 앞을 산책하기 시작했다. 새로운 취미이다. 서울에서 산책하기 좋아했던 동네는 광화문 근처였다. 대학시절, 수업이 끝나면 신촌역에서 602번 버스를 타고 광화문으로 향했다. 교보문고에서 책 몇 권을 산 후 씨네큐브로 갔다.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곤 했다. 그다음 서촌 쪽으로 빠져서, 아무 카페에 들어가서 교보문고에서 산 책을 읽고 일기를 한 바닥 씩 썼다. 마냥 그 근처를 배회하기도 했다. 나에게 산책은 단순한 걷기가 아니었다. 정신적으로든 물질적으로든 소비하는 행위가 포함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산책이란 오로지 걷고 숨 쉬는 행위다. 겨울에는 날카롭게만 보였던 장대 같은 나무들을 바라보는 일이며, 파도가 없는 바다 대신 바닷바람에 철썩이는 나뭇잎들의 소리를 듣는 일이다. 찬란한 풍경이 본래 나와 상관없는 듯 매번 생경하다. 숲 속을 걷고 있는 내가 꿈속 모습은 아닐까 싶어서 서울을 떠올리려고 애쓴다. 서울 속 내가 진짜고 여기 있는 나는 어째 만들어진 것만 같다. 그런데 그렇게 그리운 서울 속에 내 모습이 그려지지가 않는다. 산책을 하다가 나에게 묻는다. 여긴 어디고 나는 누구? 매번 답을 하지 못한 채 산책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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