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 증명〉최진영
“너를 보고 싶었다.
낡고 깨진 공중전화부스가 아니라, 닳고 더러운 보도블록 틈새에 핀 잡초가 아니라, 부옇고 붉은 밤하늘이나 머나먼 곳의 십자가가 아니라, 너를 바라보다 죽고 싶었다. 너는 알까? 내가 말하지 않았으니 모를까? 네가 모른다면 나는 너무 서럽다. 죽음보다 서럽다. 너를 보지 못하고 너를 생각하다 나는 죽었다. 너는 좀 더 일찍 왔어야 했다. 내가 본 마지막 세상은 너여야 했다. “ (p.16)
“구가 말했다.
하지만 그런 날은 올 거야. 그런 날이 오면 너 모르는 데로 가서 나 혼자 죽을까? 그러는 게 나을까? 그건 가장 좋지 않은 방법이라고 나는 대꾸했다. 그리고 부탁했다. 우리 앞으로 함께 해야 할 것들, 함께 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서 시시콜콜 다 이야기한 다음 죽음에 대해 생각해 보자고. 무섭고 슬픈 이야기는 우리 좀 더 건강해진 다음에 농담처럼 나누자고. 말을 끝내고 다시 눕는데, 구가 말했다.
만약 네가 먼저 죽는다면 나는 너를 먹을 거야.“(p.19)
방에 누이고 소독용 알코올로 몸 전체를 꼼꼼히 닦았다. 입속과 콧속과 배꼽과 항문까지, 다 닦았다. 손톱과 발톱을 깎아주었다. 깎인 손톱과 발톱 조각은 내가 먹었다. 머리카락을 단정히 빗겨주었다 빠진 머리카락도 내가 먹었다. 꿀꺽 삼켰다. 작은 구는 그새 더 작아져버렸다. 가만히 앉아서, 외로운 빛으로 변해가는 구의 몸을 바라봤다. (p.37)
그날 밤, 희한한 꿈을 꾸었다. 나는 흐느끼는 아쓰타 씨 부인 앞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아무리 기다려도, 기다려도, 기다려도, 기다려도, 그녀의 울음은 멎지 않았다. 온몸이 푸른빛 슬픔으로 물들어 있었다.
“일단 팔이라도…….”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는 그녀의 몸에서 사랑스러운 팔을 떼어냈다. 슬픔에서 분리된 팔은 부드러운 하얀빛을 발하며 솔직함과 온화함을 되찾았다. 아직도 그녀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다른 한쪽 팔도 떼어냈다. 이로써 그녀의 6분의 1 정도는 울음을 그친 셈일까. 치마를 들어서 포동포동한 허벅지를 누르며 두 다리도 떼어냈다. 블라우스 단추를 풀고 새하얀 살갗을 손등으로 어루만지며 몸통의 경계선을 찾았다. 배꼽 바로 아래, 명치, 가슴 사이. 찾아낸 경계를 하나씩 분리할 때마다 부인은 점점 줄어들었다.(p.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