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해방일지》정지아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p.7)
"노동이......노동이......힘들어."
그때까지 위태위태 잘 참고 있던 나는 노동이 힘들다는 빨치산의 고백에 그만 풉, 웃늠을 뿜고 말았다. 스스로도 염치가 없었는지 그가 비식 웃므며 덧붙였다.
"사흘 노가다 뛰고 석달 입원했네. 나는 암만해도 노동과 친해지지 않아."
"저놈의 부르주아 근성은 머리가 희캐져도 뿌리가 안 뽐히그마이. 그런 몸이 뭘라고 빨갱이는 돼가꼬......"(p.150)
환갑 넘은 빨갱이들이 자본주의 남한에서 무슨 혁명을 하겠다고 극복 운운하는 것인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블랙 코미디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자리를 떴다.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p.243)
누구에게나 사정이 있다. 아버지에게는 아버지의 사정이, 나에게는 나의 사정이, 작은아버지에게는 작은아버지의 사정이. 어떤 사정은 자신밖에 알지 못하고, 또 어떤 사정은 자기 자신조차 알지 못한다. (p.3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