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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정서재 Apr 14. 2023

아버지가 죽었다

《아버지의 해방일지》정지아

아버지가 죽었다.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평생을 정색하고 살아온 아버지가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진지 일색의 삶을 마감한 것이다.(p.7)


소설은 '아버지의 죽음을 공표'하며 시작한다.


평생을 진지한 척 살았던 아버지라는 인간이 어이없게도 가장 하찮게 전봇대에 머리를 박고 죽었다며 냉소적으로 디스해버리고 만다. 빨치산의 딸 '박리아'는 아버지의 3일장을 치르면서, 살아생전 절대 이해하지 못했던 아버지를 이해하기 시작한다. 리아는 장례식에 조문 온 지인들로부터 아버지의 다른 면모를 발견하기도 하고, 과거 추억을 소환하는 방식으로 인간 박동식, 아버지 박동식과의 화해를 도모한다. 이미 독자는 첫 두 문장을 읽고, 한국근대사에서 악의 존재로 치부됐던 빨치산에 대한 경계심을 허물고 희미한 눈으로 글을 읽어간다. 위세를 떨치던 빨치산의 부정적 이미지는 전봇대에 머리박은 치매 노인에 대한 안타까움과 호기심으로 단박에 유턴해 버린 것이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 아니었다면 어땠을까. 빨치산 아버지를 원망하며 살아온 딸이 아버지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며 결국 화해에 이르는 과정이 인간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비극적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가혹한 선택의 기로에 있던 인간의 고통은 이념과 사상을 떠나 감동으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이런 아쉬움 외에, 작가의 배경을 따로 놓고 보면 매우 재밌고 탄탄한 내공이 드러나는 작품임에 틀림이 없다. 적재적소의 인물 배치와 이질감 없는 남도 사투리, 딸의 감정선 변화 등이 무척 자연스럽고 풍부하게 그려진다. 아버지를 중심으로 그와 관련된 인물들과의 서사도 촘촘히 배치돼 있다.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온 이들은 저마다 당신과 다른 인연을 맺고 있다. 평소에 딸은 아버지가 스스로 유물론자, 사회주의자로 칭하면서 정작 가족은 돌보지 않고 남의 일에만 열성인 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노동을 힘들어하면서 노동을 부르짖는 점 등도 이율배반적이라며 환멸했다.


"노동이......노동이......힘들어."
그때까지 위태위태 잘 참고 있던 나는 노동이 힘들다는 빨치산의 고백에 그만 풉, 웃늠을 뿜고 말았다. 스스로도 염치가 없었는지 그가 비식 웃므며 덧붙였다.
"사흘 노가다 뛰고 석달 입원했네. 나는 암만해도 노동과 친해지지 않아."
"저놈의 부르주아 근성은 머리가 희캐져도 뿌리가 안 뽐히그마이. 그런 몸이 뭘라고 빨갱이는 돼가꼬......"(p.150)



현재의 독자들이 이 소설을 비교적 쉽게 받아들일 수 있는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과거 빨치산은 두려움과 매도 대상이었다는 사실은, 이미 과거의 일로 잊힌 지 오래이다. 그보다 부녀간의 미움과 화해라는 가족드라마와 같은 보편적 주제가 주는 감동이 더 진하기 때문이다. 우리네 아버지를 다시 생각해 보는 시간일 수도 있다. 가족의 이해와 화해라는 관념적 주제는, 시각예술인 영화에서 더 효과적으로 전달되기도 한다. 영화 <아빠 딸>(2017)은 이가라시 다카히사의 소설 <아빠와 딸의 7일간>이 원작인데, 말 그대로 아빠와 딸의 몸이 바뀌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로 구성돼 있다. 아빠는 학교로, 딸은 회사로 가면서 점점 서로를 알아간다는 내용이다. 가족이면서도 가장 먼 관계, 서로의 서사를 알지 못하고 알려고 하지 않는 관계가 바로 부녀지간이다.



환갑 넘은 빨갱이들이 자본주의 남한에서 무슨 혁명을 하겠다고 극복 운운하는 것인지,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블랙 코미디다.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자리를 떴다.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p.243)



《아버지의 해방일지》의 아버지는 '하릴없는', '향꾼에(함께)', '사정이 있겄제.' 이런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는다. 골치 아픈 문제는 깊게 생각할 것 없이 퉁쳐버리자는, 그러니까 하릴없이, 함께, 그냥 사정이 있다고 생각해 버리자는 주의다. 이 주의는 요즘 세상에 잘 부합하는 듯하다. 역사적인 까다로운 문제에 둔감해진 것도 사실이고 옛날일로 치부해버리거나 기억조차 할 생각이 없다. 즉, 사회적으로 많이 자유로워진 상황이다. 그래서 이 초록책이 잘 팔리는 지도.


누구에게나 사정이 있다. 아버지에게는 아버지의 사정이, 나에게는 나의 사정이, 작은아버지에게는 작은아버지의 사정이. 어떤 사정은 자신밖에 알지 못하고, 또 어떤 사정은 자기 자신조차 알지 못한다. (p.32~33)



딸은 조문객들을 대하며 점차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바뀌어 간다. 평소에는 사회주의자랍시고 가족보다 이웃을 위해 헌신했던 아버지를 어리석다며 한탄했다. 하지만 지인들과의 속사정을 알면 알수록, 딸은 역사적, 이념적 부담을 내려놓고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살다 간 아버지를 비로소 마주하게 된다. 결국 아버지가 죽고 나서야 당신의 인생을 반추하며, 사상가가 아닌 한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가족 간의 화해에 대한 공감이 크게 작용한 소설이다. 작가 정지아는 책이 인기 있는 이유를 386세대의 향수에 연관을 지어 진단하기도 한다. 우리 역사에서 분명 빨치산은 무조건 때려잡아야 한다는 반공사상에 열심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또한 빨치산에 희생된 무고한 사람들도 분명 있고 지금도 그 아픔을 악몽으로 떠올리는 분들이 있다. 이 소설을 비롯해서 창작물은 온전히 현재를 살아가는 독자의 선택에 명운이 달려있다. 이 시대가 사상 대신 가족애를 선택했다면, 그것의 옳고 그름을 따질 수는 없다. 각자가 쥐고 있는 생각이 다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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