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미정서재 Apr 24. 2023

피해자 코스프레?

_  다시 세우는 생존전략


"엄마가 미안해." 

"다 내 탓인가 봐."      


수연 씨는 7년 차 은행원이다.     


금융계에 취직했을 때 부모님은 물론 결혼을 앞둔 예비신랑도 무척 기뻐했다쌍둥이 자매를 낳은 후그녀의 삶은 직장과 가정 사이에서 복잡하고 피곤하게 돌아간다아침 7시 30분, 3살 어린 딸들을 부랴부랴 놀이방에 데려다주고 정신없이 출근하면아침밥은 고사하고 식은땀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온오늘도 늦을까 봐 바둥댔지만잠시 숨만 돌리고 어느새 창구에 앉아 손님을 응대한다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놀이방 마감 전에 아이들을 데려올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진다이렇게 하루가 마무리되면 그걸로 다행이다하지만 변수는 예고 없이 생긴다누구 하나 아프거나 안 간다고 조르는 날에는 차라리 수연 씨가 울고 싶을 정도로 정신이 아득해진다     



아이 한 명이 밤새 고열에 시달린다보채고 울고 열은 안 떨어져서 미칠 지경인데남편은 내일 출근해야 하는데 잠도 못 자겠네하며 구시렁댄다. "설마 코로나는 아니겠지그 놀이방 보내지 말랬잖아." 수연 씨는 일단 열을 떨어뜨려야 한다는 마음 하나로 이를 악물고 대꾸조차 하지 않는다기다리다 못해 결국 대학병원 응급실로 차를 몬다



'어제부터 콧물이 나는 것 같았는데 내가 너무 방심했나?'  밤중에 아이 하나는 남편에게 맡기고 나왔으나 내내 마음이 편하지 않다남편의 눈초리와 입모양새가 뭐라 뭐라 탓을 하는 것 같아 내내 불편하다직장맘으로 산다는 건 가족들에게 시간을 온전히 쓰지 못하는 환경에 놓이게 된다는 뜻이다그럼 죄책감은 누구의 몫일까? 수연 씨는 하나 잘못도 없는데 항상 불안과 수면부족에 시달리니 말이다.     



저녁 밥상이 부실하면 남편은 은근히 핀잔을 준다분명 맞벌이인데도 괜히 미안하고 작아지는  왜인가? 아이의 병은 온통 엄마 수연 씨 탓인 양 '도대체 뭐 했냐?'는 말로 돌아온다분통이 터질 노릇이다직장에서 치여집구석에서 치여이중고에 시달리는 수연 씨의 고통스러운 감정은 좌절감과 상처로 자리 잡는반복적이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육아와 곱지 않은 시선그리고 놀랍도록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남편이라는 인간그녀의 감정적 욕구를 받아주는 곳이 없다이쯤 되면 수연 씨는 환영받는 자가 아니라 누군가의 뒤치다꺼리를 하고 불만을 받아주는 감정 노동자이자 피해자라고 불러야  것 같다.     





결혼 전에 지녔던 자신에 대한 자긍심은 사라지고, 퇴색한 단어들만 나열하면서 깊은 자의식에 빠져 들어간다치열한 경쟁을 뚫고 돈과 자신의 영역을 구하기 위해 뛰어든 직업세계는 평범한 가정을 지켜내기에는 왠지 걸림돌인 것만 같다



버지니아 울프처럼 '자기만의 방'을 꿈꿨던 수연 씨에게는 온전한 자기만의 방이 어디에도 없다누구 엄마누구 아내그래서 이렇게 살아야 하고 조금만 잘못돼도 다 너 때문이라는 압박이 가슴을 짓눌러온다부모로서 견뎌야 할 일임은 잘 알고 있지만아무도 그녀의 수고를 알아주지 않는다는 게 문제이다그녀 또한 이제는 당연한 듯이 힘든 상황이 닥치면 자기 탓을 하고 있다     



"행복에는 늘 거짓이 그림자처럼 드리우기 마련인 듯했다아니어쩌면 거짓은 조명일지도 몰랐다행복이라는 마네킹을 비추는 밝고 좁은 조명."      


드라마로도 방영된 이혁진의 소설 사랑의 이해에 나오는 말이다. 공교롭게도 은행을 배경으로 네 남녀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광고카피는 '사랑했지만 사랑만 원한 게 아니었다'는 소설 속 인용구가 도드라지게 강조됐다. '사랑'이라는 관념적이고도 관계 중심적인 단어를 두고남녀의 접근법이 매우 다르다는 핵심을 찌르는 문장인 셈이다.     



남성에게는 이해의 측면이여성에게는 공감의 측면이 더 많이 작용한다고 한다이 차이를 각자 아는지 모르는지관계가 익숙해짐에 따라 상대의 마음을 살피려고 하지 않게 된다이해든 공감이든 어디로 증발해 버린다. 결혼 후 구속의 힘이 강해지고 책임이라는 프레임 속에 자리하면특히 돈과 양육문제가 가장 표면으로 부상한다



부부는 서로의 마음을 살필 여유도 없이 차이를 인정함과 동시에 그냥 이해를 주고받기를 포기하고 만다주로 여자 쪽이 이끌기보다 끌려 다니기를 선택하고 현실에 순응하는 경우가 많다그녀들이 어디 모자라서아니빠른 포기가 덜 상처받는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하지만 자신도 모르게 자꾸 마음 깊은 곳에 응어리가 쌓이는  어쩔 수가 없다.     



여성들이 그저 고생을 감수하고 현실에 순응하다 보면 꼭꼭 감춰뒀던 마음의 병이 생각지도 못한 방향으로  튀어나갈 수 있다스트레스를 풀 시간도 없고 에너지도 부족한 상황이지만아주 작은 힘이라도 내야 살아갈 수 있다는  모두 알고 있다그렇다면 이제 아픔을 참고 살아서는 안된다자기 탓으로 모든 것을 돌리는 포기라는 전략 대신내면에 꼭꼭 감춰뒀던 강한 마음을 끄집어내는 전략을 세워야 한다     



자기를 돌봐야 하는 시간이 왔다이대로 병들어 죽을 순 없잖은가내 탓이라고 가슴만 두드릴 게 아니라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동지를 하나씩 만드는 게 해법이 될 수 있다내성적이라 말도 못 건다살려면 작은 용기는 필수다틀림없이 응원을 주고받다 보면 없던 힘도 생기고 가족이 주는 서운함도 조금은 완화될 것이다혼자만 애쓰고 인정받지 못했던 수고를 이제 다른 집단에서 인정받아보는 재미도 쏠쏠하다의외로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에게 다정한 태도로 돌봐주는 이들이 구석구석에 존재한다.         





※ 당신은 상대방이 내 얘기를 듣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좋아하는가

√ YES

√ NO     


※ 당신은 인간은 어차피 죽을 거아프면 가만히 누워서 죽을 날만 기다릴 것인가?

√ YES

√ NO     


※ 모두 'NO'를 체크한 당신에게 의외로 도움이 되는 tip 3      


1_당신이 들었던 가장 마음이 아팠던 말은 무엇인가?     


2_ 위 말을 듣고 싶은 말로 바꿔보자.     


3_ [책처방버지니아 울프,자기만의 방(아르테, 202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