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카페 앞 원목 벤치에 앉아 호피무늬 선글라스를 만지작거리는 그녀는 어딘지 모르게 낯설어 보였다. 잠시 후 클라이밍 동호회에서 만난 W가 다가왔다. 긴 머리가 어느새 단발이 됐다. 찻집은 정시에 오픈했다. 우리는 3층 베란다에 앉아 인사동을 내려다봤다. 낮은 지붕 사이사이 갤러리의 간판과 골목을 거니는 외국인들이 보였다. 마침 청자켓을 걸친 B가 도착했다.
"인사동에서 만나요."
지난겨울 민화수업에서 처음 만났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새해가 밝았다. 사회생활에서 전혀 접점이라고는 없는 우리는 하나의 공간에서 함께 그림을 그렸다. 넷 다 순수미술전공자도 아니었고 각자 다른 이유로 이 동네에 모여들었다.
추운 겨울, 비단에 송나라 화조도를 그리고, 인사동 화방을 누비면서 버텼다. 우리는 봄이 오기 전 숨을 고르고 뛸 준비를 하는 미생 인간. 아무 돈벌이도 안되고 솜씨도 서툴지만 그래도 붓을 꼭 잡고 시간을 인내했다.
K는 원인불명의 통증에 시달렸다. 명상과 호흡으로 통증을 견딘다고 했다. 겨울 찬 바람보다 더 매서운 붓끝으로 한 올 한 올 꾀꼬리의 깃털을 그릴 때는 무념무상에 빠져들었다. 탄자니아에서 봉사를 했던 W는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돌보려고 귀국했다. 그림 그리는 시간은 온종일 중증 치매노인을 돌보느라 심신이 지친 그녀가 유일하게 숨 쉴 수 있는 시간이었다.
나도 집에 있으면 숨이 막혔다. 미친 듯이 걷고 걸어도 다시 찾아온 우울감을 떨치기가 힘들었다. 남양주 정약용 유적지까지 차를 몰았다. 가슴이 답답할 때면 북한강변 기슭에 서서, 물에 미끄러져 들어가는 광부(狂夫)와 땅에 주저앉아 슬피 우는 아내를 떠올리곤 했다. 살아보겠다고 김밥을 우걱대며 뭔가 다짐하고 다짐하면서.
B는 광화문의 어느 잘 나가는 디자인 회사를 퇴사했다. 직속상사의 괴롭힘 때문이었다며 최근 동양화에 꽂혔다고 했다. 선과 면을 채우는 지난한 작업이 남들 눈에는 비생산적으로 보일지라도, 사람에 치이는 일이 없어 가장 편하다고 했다.
인사동의 오늘 날씨는 변덕스러웠다.
오전에 불던 훈풍이 갑자기 찬 기운으로 바뀌었다.
찻집 사장이 살짝 데워준 찹쌀 약과를 베어문다. 쫀득하다.
서로의 사연을 보듬으며 미술 이야기를 나눴다. 그림에 대한 내공이 짧아 길게 이어지지 않았고 금세 '아쌈 밀크티'로 화제가 옮아갔다. K는 잠시 살았던 영국에서 아쌈 밀크티를 처음 마신 후 홍차덕후가 됐다고 한다. 아쌈? 얼그레이? 블렌딩의 유무라고 한다. 아무튼 그녀가 권해준 밀크티는 오리지널인지 알 수는 없으나 꽤나 약과와 묘한 조화를 이뤘다. 예상치 못한 조합이다. 쫀득과 부드러움이라. 아쌈과 밀크티라.
새로운 모임과 조직에 들어가면 어김없이 통성명 다음에 나이? 사는 곳?을 묻는다. 인사동 멤버는 모두 약속이나 한 듯, 흔히 물음 직한 질문 따윈 하지 않았다. 도쿄 유학 시절에 한국인 외 아무도 묻지 않았던 신상에 대한 질문 말이다. 가장 한국적인 동네 인사동에서 우리는 오히려 이국적인 침묵을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