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판 한 달 살기 DAY4 (2)

버킷리스트 한 줄을 지우다

by 최민정

아이들의 학교 옆엔 커다란 성당이 있다. 그리고 그 앞엔 커다란 성모마리아상이 지나가는 사람들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보고 있다.

몇 년 전 동네에 있는 성당에 처음 발걸음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딱히 이유는 없었다. 그저 교회보다 성당의 느낌이 좋았다. 갑자기 그런 성당의 온기를 느끼며 성경을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 아마 지친 회사 일과 육아로 마음이 힘든 시기가 아니었을까 한다. 그런 곳에서 주일을 지내면 지친 마음에 위로가 될 것 같았다. 하나님은 무조건 살아 낼 용기를 줄 것 같았다. 그래서 성당 문을 열었다.

하지만 복잡한 미사 순서와 수많은 기도 종류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남편과 나는 성당에 다니는 걸 포기하고 말았다. 딱 한 번 다녀온 후 내린 결정이었다.


금요일에는 아이들이 그 어려운 미사를 드리는 날이다. 그것도 영어로! 아이들은 신께 예의를 갖추기 위해 긴 바지를 입고 등교했다. 선생님 말씀은 또 참 잘 듣는다.

금요일 이른 하굣길도 여전히 평온할 줄 알았다. 하지만 교실 문을 나서는 큰아이의 얼굴이 좀 어두웠다.

“엄마 mass 진짜 너무 어려워요. 어떻게 하는지 몰라서 실수투성이였어요.”

한글로도 어려운 성경 말씀과 기도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1시간 30분의 긴 미사 시간이 얼마나 어색했을까. 내가 성당에서 보낸 힘든 시간을 생각하니 절로 공감되었다. 작은아이도 고되기는 마찬가지였나 보다.


“엄마, 저는 계속 립싱크만 하다 왔어요.”


하지만 이 또한 피할 수 없는 한 달 살기의 특별한 경험일 거라는 생각이다. 매점에서 달콤한 간식을 사 먹는 즐거움을 맛보았다면, 가만히 앉아 기도문을 들을 수 있는 인내심도 갖추어야 한다. 미국 땅에서 친구들과 함께 기도드리는 경험을 언제 또 해 보겠는가?

아이들의 성장 과정에 때로는 부족하고 힘든 것도 있어야 한다는 게 엄마의 개똥 교육철학이다. 그리고 지금은 그것들을 겪고 이겨내는 연습을 하기에 딱 좋은 환경이다. 하루 7시간 영어로 된 수업을 듣고, 때로는 힘든 미사 시간을 견디면 반드시 즐겁고 달콤한 순간도 찾아온다는 것을 몸소 깨닫는 편이 좋지 않을까? 그래서 풍족하지 않은 용돈을 줄 것이고 어렵고 어색한 일들을 겪게 되더라도 스스로 헤쳐나갈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줄 것이다.


오늘 밤엔 다소 지친 아이들을 위해 반짝이는 밤 여행을 계획했다. 실은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이기도 했다.

“오늘 밤에 별구경 갈래?”


마침 하늘에 구름이 많지 않았고, 별구경 장소로 마땅한 만세 절벽 사전 답사도 마친 상태였다. 게다가 보호자인 나의 체력이 그런대로 괜.찮.다. 우린 도시락과 음료를 포장해 만세 절벽으로 향했다.


만세 절벽에 도착해 아이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무거운 역사를 이야기해 주었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빛나는 별이 된 이들을 어두운 하늘에서 찾아보기로 했다. 저녁 거미가 내리고 짙은 어둠이 깔리자 별빛을 보기 위한 차들이 하나둘 언덕으로 올라왔다. 어린아이들은 캄캄한 어둠이 무서운지 연신 소리를 질렀고, 어른들은 쏟아지는 별을 감상할 만한 명당을 찾았다.


“별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


하늘을 밝게 수놓은 별들은 점점 촘촘하게 박혔다. 별빛 투어를 온 사람들은 가이드 주변에 서서 천체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가이드가 쏘아 올린 레이저 포인터의 불빛이 밤하늘을 더 신비롭게 만들었다. 수 천 년 전 유목 생활을 하던 바빌로니아인들은 길을 잘 찾기 위해서 별자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초원에서 그릴 수 있는 유일한 지도가 그들을 따라다니는 별이었을 테니까. 생존을 위해 별자리를 탐색할 필요가 없는 나에겐 오직 유유히 흐르는 은하수 물결만 눈에 들어왔을 뿐이었다.


20대 중반 그랜드 캐니언을 보고 느꼈던 감정이 그대로 되살아났다. 우주에서 나라는 생명체는 모래알처럼 하찮은 존재라는 것. 존재한다고 말하기에도 사소하다는 것. 하지만 이 대단한 우주에 선택받은 생명체 중 하나가 나라면 하루를 감사하게 살아봐야 한다는 것. 우리 가족은 별을 가득 담은 하늘을 덮고 돗자리 위에 나란히 누웠다.


“Excuse me. Guys.”


자동차 라이트를 켜고 길을 떠나는 사람의 인사조차 빛나는 밤이다.

#사이판 별빛 투어


*소소한 TIP

별에 대한 지식과 멋진 사진을 남기길 원한다면 별빛 투어를 신청하세요. 하지만 충분히 오랜 시간 자유롭게 별을 보고 싶다면 일몰 전, 차를 몰고 만세 절벽에 올라가는 것도 괜찮아요. 단, 포장된 도로이지만 사방이 칠흑같이 어두워요. 초보가 운전하는 건 절대 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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