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절벽? 아니, 살인 절벽!
사이판에서 남편과 함께 할 날이 겨우 이틀 남았다. 오늘은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놓고 남편이 계획하고 진행하는 투어에 따라가기로 했다. 기획팀 짬밥이 10년이 넘는 사람이라 왠지 기대된다.
사이판의 북쪽 끝으로 가 보자.
남쪽에 위치한 우리 숙소에서 차로 30분 정도를 달리면 색다른 느낌의 사이판 풍경이 펼쳐진다. 그곳엔 해수면 위로 곧게 뻗은 수직 암벽, 깎아낸 듯 아찔한 만세 절벽이 있다. 만세 절벽과 가까운 곳에는 비슷한 모양의 자살 절벽도 자리 잡고 있다. 제주도의 주상절리나 괌에 있는 사랑의 절벽과 비슷한 지형이지만 그 이름에 붙은 사연은 가슴 아프다.
만세 절벽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에 대항하던 일본군과 민간인 천여 명이 패전을 앞두고 바다로 뛰어들며 ‘천황 폐하 만세’를 외친 곳이다. 패전국의 군인들과 국민이 본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전쟁터에서 끔찍한 죽음을 맞이한 것이다. 전쟁 중엔 사람의 목숨조차 깃털처럼 가벼웠던 탓일까. 자의든 타의든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현장에 서니 가슴이 먹먹했다.
만세 절벽 위에서 끝 모를 태평양을 바라보다 그보다 더 높은 곳, 자살 절벽에서 바라본 태평양은 어떨지 궁금해졌다. 사이판의 푸른 하늘과 맞닿은 웅장한 절벽에 어쩌다 그런 끔찍한 이름이 붙었을까. 자살 절벽 역시 만세 절벽의 비극과 같은 슬픔이 남은 곳이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마피산까지 후퇴한 일본군과 민간인들이 항복을 권하는 미군에 대항하여 절벽 끝에서 몸을 던져 전원 자살하였다고 전해진다. 아래에서 올려다본 절벽은 그 높이가 아찔했다. 도저히 절벽 아래로 몸을 던진 그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처럼.
“우리나라 사람들이 강제로 끌려가 타국에서 스스로 목숨을 버린 게 진짜 가슴 아픈 일이지.”
남편의 말이 맞았다.
진짜 마음을 울린 곳은 만세 절벽 근처에 자리한 ‘태평양 한국인 위령평화탑’이 세워진 장소였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에 강제 징용된 군인들과 위안부로 끌려와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한국 여성들의 영령을 위로하기 위해 1981년 건립된 곳이었다. 태평양 너머 가족과 헤어져 얼마나 두렵고 외로웠을까? 한참을 그곳에 가만히 서서 그들의 아픔을 위로했다. 그저 하필 그 시대에 태어나 이곳까지 끌려와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죽었을 슬픈 영혼들을.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 군인은 스스로 절벽에서 뛰어내릴 마음은 아니었을 것이다. 분명 우리 땅으로 돌아와 사랑하는 가족을 만나고 싶었을 것이다. 삶에 대한 의지가 강해도 그걸 표현할 수 없는 상황이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자살 절벽이라는 이름이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나라의 패망을 절망해 스스로 목숨을 끊어야 하는 건 우리가 아니었으니까. 철저히 저들 위주의 명명이 또 한 번 가슴 저리게 서글프다.
파란 하늘과 하얀 구름, 초록빛 녹음의 언덕은 화려한 채도 속에 아련한 아픔을 가득 담고 있었다. 눈부신 경치 이면의 역사는 축축하고 어두웠다. 여유로운 땅 사이판이 가진 슬픔 또한 기억해야 할 여행의 한 자락이 되었다.
#Suicide Cliff #Banzai Cliff Monument #Korean Peace Memorial
*소소한 TIP
태평양 전쟁 당시 사이판에서 우리 군과 민간인의 희생도 많았어요. 아이들도 반드시 알아야 할 우리의 슬픈 역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