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주인인 땅
서해 안면도 정도의 면적, 인구는 우리 동보다 좀 많은 수준의 작은 섬 사이판의 아침은 동이 트자마자 시작된다. 아이들과 소란스럽게 커튼을 걷어 연주황색 아침노을을 바라보았다. 삐그덕 대는 창문까지 열면 멀리서 닭 우는 소리도 들린다. 자연과 가까운 마음 편한 일상이 열린다.
4주 수업을 등록한 MCS(Mount Carmel School)의 수업은 7시 30분에 시작된다. 끼니는 꼭 챙겨야만 하는 한국 엄마의 아침은 평소보다 더 분주해졌다. 사이판의 여유는 등교하는 학생과 그걸 돕는 엄마의 아침 시간에는 해당하지 않는 모양이다.
며칠 후 한국으로 되돌아가야 하는 남편의 도움에서 차츰 벗어나는 연습을 하기 위해 남편을 조수석에 태우고 직접 운전대를 잡았다. 출국 전 운전 연습을 많이 했지만, 운전석에만 앉으면 어깨가 빳빳해지는 건 겁쟁이의 숙명인가 보다. 그래도 운전 베테랑이 조수석에 앉아있으니 마음이 놓였다.
학교는 차로 10분도 채 안 되는 거리에 있다. 남편은 내비게이션을 켜지 않고 가 보자고 제안했다. 사이판 길은 단조롭기도 하거니와 운전자들이 느긋한 편이라 충분히 할 수 있다며 독려했다.
하지만 남편 말은 틀렸다. 분명 보통 사람들에게는 어렵지 않은 길이겠지만 나는 평범한 운전자가 아니다. 온통 초록색 나무와 비슷한 저층 건물이라 어디서 방향을 틀어야 하는지 감이 잘 잡히지 않았다. (남편은 이런 날 도저히 이해 못 하겠다는 눈빛이었다)
“여기는 닭이 되게 많다.”
남편 말에 눈동자만 힐끔 돌려 차 창밖을 보니 닭 몇 마리가 노닐고 있었다. 닭들은 닭장에 들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사방이 뚫린 노상을 걷고 있었다. ‘저러다 멀리 날아가 버리면 어떡하지?’ 타국에서 남의 닭을 걱정하기 시작했다.
찻길을 달리다 보니 이번에는 도로 한가운데 시커먼 개가 나타났다. 플란다스의 개 파트라슈처럼 덩치가 제법 큰 녀석이 대로를 가로질러 걷고 있었다. 개는 결코 차들을 의식하며 내달리지 않았고, 맞은편에 오는 차는 서서히 속도를 늦추었다. 개가 길을 다 건너고 나서야 차들은 다시 제 속도를 냈다.
큰 개가 목줄 없이 길가에 방치된 것에 첫 번째로 놀랐고, 사이판 차도의 주인은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에 두 번째로 놀랐다. 차도 곁을 지나는 개나 닭을 향해 경적을 울리는 차는 한 대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은 사람이 닦아 놓은 차도지만 애초에 사람의 길이 아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쩌면 그들이 살던 세상에 사람이 여기저기 장애물을 설치해 놓았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오늘도 아이들은 웃는 얼굴로 하교했다. 연이틀 정말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 일기라도 쓰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이들은 차에 타자마자 새롭고 신기한 학교생활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Let’s play time이라고 해서 막 놀려고 준비했거든요? 근데 애들이 가만히 자리에 서 있더라고요. 알고 보니까 pray time인 거 있죠?”
작은 아이는 자신이 겪은 황당한 에피소드를 말하며 연신 싱글벙글했다. 경건한 분위기 속에서 혼자 몸을 달싹였을 생각을 하니 절로 웃음이 났다. 가톨릭 학교라 금요일 미사 시간뿐만 아니라 일상 속 틈틈이 기도를 드리는 모양이다. 종교가 없는 엄마에게는 그 또한 신기한 일이다. 신에게 기도하고, 감사하며 섬기는 마음을 배우는 것. 그 또한 값진 경험일 테니까.
아침에 노상에서 울던 닭들이 멀리 날아가 버리면 어쩌지 걱정했던 마음이 부끄러워지는 저녁이다. 개들의 무단횡단에 화내지 않는 운전자들, 닭이 어디로든 날아갈 자유를 주는 닭 주인들, 그리고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일지 모르는 신을 섬기는 사람들.
소유욕으로 가득했던 마음의 빗장이 슬그머니 풀리는 하루였다.
*소소한 TIP
사이판을 운전할 때 조심해야 하는 것들. 아슬아슬 차도 끝을 지나는 현지 사람들과 시도 때도 없이 차도로 출몰하는 동물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