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판 한 달 살기 DAY2
어서 와, 사이판 학교는 처음이지?
사이판 알람은 6시 정각에 울렸다. 한국보다 1시간 빠른 곳이니 평소보다 2시간 정도는 일찍 일어난 셈이다. 이곳에 오기 한 달 전부터 큰아이의 기분은 롤러코스터를 탔다. 어제는 설레었고, 오늘은 두려웠으며 내일은 다시 기대하기를 반복했다. 그건 엄마인 나도 마찬가지였다. 뭐든 적응의 시간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처음 며칠간은 지옥과 천국을 오갈 것이다.
등교 첫날, 팔자에도 없던 도시락을 쌌다. 도시락이라고 해봐야 한국에서 챙겨 온 멸치볶음으로 주먹밥을 만들고 사과를 깎아 자른 게 전부였지만.
대한민국 급식 사랑합니다.
학교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층 교무실까지 걸어가는 길은 온통 ‘Good morning.’이었다. 사람들은 눈만 마주치면 즐거운 노래를 부르듯 인사했다. 바람에 나뒹구는 잎을 쓸어 모으는 사람도, 정문을 지키는 가드도, 출근하는 선생님들도 내리쬐는 햇볕만큼이나 뜨거운 아침 인사를 건넸다. 사이판 사립학교 중에서 규모가 가장 크다고 해서 선택한 곳이었다. 교육의 질이 학교 규모에 꼭 비례하지는 않겠지만, 규모가 큰 데에는 이유가 있을 거라는 나름의 논리였다.
하지만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다닌다는 학교는 예상보다 커 보이지 않았다. 교실과 운동장, 야외 카페테리아(긴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다)는 분명한 구분 없이 연속되어 배치돼 있었다. 모르고 봤다면 학교 건물인지 모를 정도였다.
아이들은 교장선생님과 직원의 도움으로 제 학년에 맞는 반을 찾아갔다. 초등학생은 학년마다 두 반 정도 있으며, 각 반에 15명 남짓의 학생들이 공부한다고 한다. 팬데믹 이전에는 조금 더 많았다고 했다. 손을 흔들며 교실로 들어가는 아이들을 보니 내 심장이 두근댔다.
‘잘할 수 있겠지? 아니, 괜찮을 수 있겠지?’
아이들이 들어간 낯선 교실의 문이 닫혔다. 아이들의 첫 수업이 어떨지 도저히 예상할 수 없었다.
한달살이라고 해서 살림살이까지 미흡할 수 없다. 조악한 살림을 꾸리면 어딘가 탈이라도 날 것 같은 불안한 마음이었다. 먹는 것, 자는 것, 입는 것이 넘치지는 않아도 모자람이 없었으면 했다. 그래서 아이들을 등교시킨 후 짧은 시간 동안 여러 마트를 돌며 얇은 지갑을 털었다. 어린이 목욕 샴푸, 과일, 생수(사이판은 수돗물에 석회질 성분이 많아 양치할 때도 생수를 써야 한다)를 숙소에 채워 넣고 보니 어느덧 아이들의 하교 시간이 되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3시에 하교, 금요일은 1시에 하교하는 일정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 사립학교의 수업 일정도 만만치 않았다.
아빠는 3A, 엄마는 5A 반 앞에서 각자 아이들을 기다렸다. 아이들의 첫 미국 학교생활은 어땠을까? 나는 큰 아이반 문 앞 벤치에 앉아 초조하지 않은 척 아이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드디어 아이들 목소리와 함께 교실 문이 활짝 열리고 또래 아이들이 하나둘 밖으로 나왔다. 원주민, 백인과 동양인. 하교하는 아이들의 얼굴에는 어쩐지 피곤함과 행복함이 공존하는 듯했다. 나를 발견하고 팔을 번쩍 드는 아이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됐다.
영어 실력의 일취월장을 꿈꾸며 데려온 여행은 아니었다. 다른 문화를 보고 겪으며 세상을 보는 눈이 조금 트이길 원했다. 다른 모습이지만 비슷한 생각과 웃음을 지닌 친구들 속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으면 했다.
엄마와 아빠를 만난 아이들 입에서 쉴 새 없이 수업 후기가 흘러나왔다. 큰아이는,
“우리 교실에 외국 친구들이 잔뜩 전학을 온 것 같았어요.”
라며 아직 교실 속을 빠져나오지 못한 듯 흥분하며 말했다.
“브라이언은 호날두를 닮았더라고요.”
첫날 처음 본 친구와 인사에 성공한 작은 아이는 득의양양한 얼굴이었다.
아빠의 월급을 아끼고 모은 보람이 좀 있으려나. 그저 울지 않고 웃으며 하교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난 너희들이 정말 기특하단다. 잘했다.
#Mount Carmel School
*소소한 TIP
교실 한편을 양보해 준 친구들에게 한국의 기념품과 간식을 선물하는 건 어떨까요? 큰아이가 쓰던 만년 연필을 선물로 받은 친구가 날아갈 듯 기뻐했다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