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판 한 달 살기 DAY7

이런 거까지 예상하지는 못했습니다만

by 최민정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창문 여는 걸 좋아한다. 맑은 공기가 실내로 들어오면 기분마저 환기되는 느낌이 든다. 한국에서는 방충망이 얼마나 유용한 것인지 모르고 살았다. 어느 집 창에나 달려있는 너무나 흔하고 당연한 물건 아닌가. 그런데 내가 묵는 숙소에는 방충망이 없었다. 무심결에 문을 열면 이름 모를 벌레가 들어올 때도 있었다. 하지만 좁은 공간에서 문을 꽁꽁 닫고만 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동틀 무렵 사이판 하늘엔 잿빛 구름이 가득했다. 오늘은 오전에 대찬 소나기가 내릴 모양이다. 삐걱대는 발코니 문을 여는데 눈앞으로 어떤 생명체가 화다닥 지나갔다. 직감했다.


이건 도마뱀이구나.


평소 파충류의 멸종을 염원할 정도로 나는 뱀이 너무너무 싫다. 동물원에서도 파충류관 근처에는 얼씬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방금 눈앞으로 뱀이 지나갔다. 다행히 S자를 그리며 구불구불 기어가는 뱀이 아니라 기절만큼은 면했다. 놀란 가슴에 창문을 재빨리 닫고 두 손으로 입을 막았다. 꼬리까지의 길이가 내 검지 정도로 작은 도마뱀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여행지를 사이판으로 결정하기 전에 인터넷에 ‘사이판 뱀’을 검색해 본 적이 있다. 뱀이 자주 출몰하는 곳에서는 도저히 살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검색 끝에 내가 원하는 글을 찾았다. 원래 사이판에는 뱀이 없었는데 언젠가 갈색나무뱀이 유입되어 섬 생태계에 문제가 생긴 적이 있다고 한다. 그 때문에 포획 작업을 적극적으로 시행했고 현재는 뱀을 만나기 어려워졌다고 적혀있었다. 신빙성을 알 수 없는 정보지만 철석같이 믿고 싶었다. 그래야 마음 놓을 수 있었다.

하지만 도마뱀이 있다고는 안 했잖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고 바로 숙소로 들어가지 못했다.

‘내가 문을 연 사이에 도마뱀이 숙소 안으로 들어왔으면 어쩌지? 캐리어 어딘가에 숨어있는 거 아니야?’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자꾸만 부풀었다.


“도마뱀은 뱀 중에서는 귀여운 편이잖아. 애들 어렸을 때 똑 닮은 장난감도 있었잖아.”


이렇게 백번쯤 말하면 극복될까.

다행히 그 이후로 도마뱀을 마주친 적은 없었다.


사이판 생활의 고충은 하나 더 있다. 바로 분리배출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플라스틱, 종이, 캔뿐만 아니라 음식물쓰레기까지 모두 한 봉투에 담아 버린다. 처음에는 직원이 쓰레기를 모아 분리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냥 버린단다. 대체 이 많은 쓰레기를 어디다 갖다 버리는 거지?

아이들이 즐겨 보는 TV 프로그램에서 ‘태평양 쓰레기 섬’에 대해 본 적이 있다. 북서 태평양에는 한반도 몇 배 크기의 부유성 쓰레기들이 해류와 바람을 타고 한데 밀집해 있다고 한다. 전 세계 바다에는 이러한 쓰레기 섬이 여럿 존재하는데 이들을 합하면 지구 표면의 25% 정도라고 하니 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쓰레기들의 출처는 일본, 우리나라와 미국 등 다양했다. 그중 사이판으로부터 흘러 들어간 것도 있을 것이다. 내가 버리는 생수병, 비닐봉지가 어디로 흘러갈지 불확실하다는 게 내내 불편했다.

“이 프로그램을 전 세계 사람들이 봤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살아갈 지구이기에 온 가족이 방송을 보며 우울했던 기억이 있다. 한국에서는 분리배출을 열심히 했다. 재활용 비율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지만 그렇게라도 해야 지구와 아이들에게 덜 미안했으니까. 궁여지책으로 한국에서 싸 온 일회용 수저를 씻어서 여러 번 쓰고 있지만, 노력해도 어려운 것이 생수병이다. 석회질 물을 마실 수는 없는 노릇이니 식수나 채소, 과일을 씻는 용도로 생수를 많이 쓰게 된다. 아침마다 쓰레기통에 쌓인 생수통을 보면 마음이 개운치 않다.


“분리해서 버리는 게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잖아요?

분리배출이 국제관습법이 되면 좋겠습니다.”


아이들의 하교가 벌써 네 번째다. 이제 교실 앞까지 가지 않고 후문에서 두 아이를 기다리는 융통성도 생겼다. 뜨거운 자외선을 피해 급히 차에 오르자마자 아이들의 이야기가 쏟아졌다.


“엄마, 저 영어 스펠링 20문제 중에서 6개 맞았어요.”


아하, 그럼 30점을 맞았구나. 한국에서는 듣도 보도 못한 아주 신선한 점수를 받아왔네? 아이는 제 점수에 전혀 타격받지 않았다. 건강하고 안전하게만 지내자고 했더니 정말 그렇게 할 작정인가 보다. 그래도 무려 6개나 맞은 게 어딘가? 우리나라 말도 아닌데!

아이는 모든 걸 잊고 수영장으로 뛰어들었다. 여전히 찜찜한 기분이 드는 건 변덕스러운 사이판의 날씨 때문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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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TIP

오랜 기간 머물 예정이라면 한국에서 물통 디스펜서를 사 오신 후, 갤런 단위 물을 사용하세요. 그 편이 저렴하고 지구에 덜 미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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