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판 한 달 살기 DAY10
일주일에 두 번, 장 보는 날
대패 삼겹살을 사기 위해서는 Twins market에 가야 한다. 신선식품은 Payless superfresh가 좋다. 의류는 I love Saipan에 종류가 많다. 사이판에서 물건을 사는 것은 그야말로 성가신 일이다. 물론 한 마트에서 전부 사버릴 수도 있지만, 가격과 품질이 성에 차지 않는다.
아무리 면적이 좁다지만 하루에 여러 마트를 전전할 체력은 없었다. 좁은 숙소를 정리하고 아이들 등하교를 돕는 일 등 타국이라 그런지 모든 일이 더 힘에 부친다. 그래서 요일별로 가야 할 마트를 정해 놓기로 했다. 주 초반에는 신선식품과 육류를 사고 주말 전에는 가공식품과 생활용품을 사는 식으로 말이다. 처음에는 재미있었다. 꼭 사고 싶었던 한국 물건을 발견하면 속으로 유레카를 외치기도 했다. 어떤 마트 고기가 싱싱한지, 또 어떤 마트의 채소가 싼 지 보물 찾기라도 하는 것처럼 신이 났다. 하지만 마트를 전전하는 생활이 2주 차를 넘기자 물건에 대한 탐구 정신이 점차 사라져 갔다. 나는 쇼핑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다.
내놔라, 이마트!
‘우리 동네 대형 마트로 말하자면 말이지. 1층엔 신선식품, 2층엔 가공식품, 3층엔 생활용품이 있단 말이야. 제조사별로 얼마나 깔끔하게 정리가 되어 있는지 진열대를 보면 마음이 절로 편안해져. 게다가 품목별로 분류되어 있어서 가격이나 물건의 상태를 비교하기도 편하지. 그래서 말인데 너희도 이마트 같은 것 좀 갖다 놓지 그러니?’
실은 마트에 직접 가서 장을 본 것도 꽤 오래전 일이다. 요새는 온라인 장바구니에 물건을 담아 놨다 일정 금액을 넘기면 결제한다. 그리고 원하는 시간에 현관문 앞으로 배송까지 해준다. 손가락 장보기가 습관이 되어서인지 필요한 물건을 적어놓고, 운전까지 해가며 마트에 가는 일상이 적응되지 않았다. 이럴 시간에 좋아하는 TV 프로그램이나 책을 보는 게 이득이지 싶었다.
그런데 오늘은 마트에서 사소하지만 재미난 일이 있었다.
음료 진열대 앞에서 물건을 고르는데 내 옆으로 어떤 아줌마가 다가왔다. 동양인이었다. 그리고 아주 낮은 음성으로 진지하게 물었다. 중국어로. 단 1초도 알아들을 수 없었고, 눈만 동그랗게 뜨고 아줌마를 응시했다.
“I’m not Chinese. I am Korean.”
내 말을 듣고 아줌마가 화들짝 놀랐다. 사이판에 한국인이 얼마나 많은데 이렇게까지 놀랄 일인가 싶었다. 아줌마는 갑자기 하하 웃더니, 영어로 미안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내 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모자가 사이판에서 쓰기 딱 좋게 생겼다고, 어느 매장에서 샀냐고 물었다.
한국에서 샀다고 했더니, 아줌마는 정말 아쉬운 표정을 했다. 다른 모자를 갖고 왔다면 그 자리에서 당장 모자를 벗어줄 뻔했다. (싼 거라 그래요) 그리고 아줌마는 통로를 빠져나가며 마지막 한마디를 더 했다. 나중에 한국에 가면 그 예쁜 모자를 꼭 사겠다고.
‘매장엔 없어요. 일단 쿠팡에 가입하셔야 합니다.’
정말 하나도 예쁘지 않은 모자다. 챙이 넓어서 차양이 좀 잘되고, 뒤에 찍찍이가 있어서 쓰고 벗기 편할 것 같아 디자인은 고려하지 않고 산 물건이었다. 그마저도 찍찍이 성능이 떨어져 여행이 끝나면 처분할 생각이었다. 근데 아줌마 눈에는 이 싸구려 모자가 좋아 보였나 보다.
하루 종일 숙소에 있거나 카페에 가서 책을 읽다 보면 사람과 대화할 일이 없다. 아이들이 집에 돌아올 때까지 입에 단내를 물고 내내 한마디도 안 한 적이 많다. 그래서인지 중국 아줌마와의 짧은 대화가 괜히 반가웠다. 자존감을 태평양에 질질 흘려버리고 왔는지 가끔은 자아가 침체되던 참이었다. 별거 아닌 짧은 대화에 괜히 미소 짓게 된다. 모자 뒤에는 ‘made in china’라 적힌 상표가 붙어있다.
마트라도 좀 나가야겠구나.
운전하고 나면 어깨가 좀 뭉치더라도 일단은 밖으로 나가야겠다. 짧은 영어지만 낯선 사람들과의 대화에서 활력을 좀 얻은 듯하다. 입꼬리가 올라가고 발걸음이 좀 가벼워졌다. 마트에 가서 계산원과 인사를 나누는 일, 물건을 직접 골라 보는 일, 좁은 도로를 달려 숙소로 돌아오는 일. 이 소소한 행동이 지루한 일상에 리듬감을 준다.
사이판이라는 고요한 섬에서는 밖으로 나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게 끼니를 챙기는 것만큼 중요한 일이 된다.
#Twins Market #Payless SuperFresh & Truckload Store
*소소한 TIP
엄마와 아이들의 모자는 챙이 큰 걸로 준비해 주세요. 사이판에서는 자외선을 피할만한 그늘을 찾기 힘들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