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판 한 달 살기 DAY11

사이판이 어떤 섬인지 알고 있니?

by 최민정

매주 금요일엔 수업이 1시쯤 끝난다.


“엄마, 이제 Mass(미사) 시간이 그렇게 힘들진 않아요.”


다행이다. 4번의 금요일을 보내야 하는데 비싼 학비를 내가며 등록한 학교가 괴로우면 속이 좀 쓰릴 것 같았다. 오늘처럼 오후 시간이 비는 날에 엄마는 응당 옹골찬 계획을 세워놓아야 한다.

NMI(북마리아나 제도) 박물관에 가기로 했다. 차를 몰고 15분쯤 북쪽으로 올라가면 북마리아나 제도의 역사와 문화를 소개하는 박물관이 있다. 천방지축 아이들의 흥미와는 상관없이 이곳은 한번 가 보고 싶었다. 한 달을 먹고 자는 곳인데, 적어도 어떤 역사와 문화를 가진 곳인지 딱 한 번만이라도 보고 들었으면 했다. 일단 엄마인 나조차도 사이판에 대해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

작은 박물관 앞 잔디 공터에는 온몸이 새카매진 아이들이 햇볕 아래에서 뛰놀고 있었다. 티셔츠에는 SIS(Saipan International School)라 적혀있었다. 아이들은 서로를 잡거나 안으며 뒤섞여 놀았다. 깔깔대며 웃는 모습에 나까지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박물관 안에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우리 가족이 소도시로 여행을 갔을 때 들렀던 지역박물관처럼 작고 차분한 분위기였다.


이제는 아름다운 휴양지가 된 사이판의 과거는 결코 평화로웠던 적이 없었다. 스페인 사람이 괌을 발견한 이후 사이판은 줄곧 스페인과 독일에 거쳐 일본의 지배를 받아야 했다. 박물관은 다른 나라 통치하에 있던 시기들을 분류해 전시해 놓았다. 깨진 약병처럼 아주 작은 소품부터 전쟁에 사용되었던 무기까지 그 종류가 다양했다.

옛 일본 병원 자리에 마련된 박물관에는 한국인의 기록도 남아 있었다. 태평양 전쟁으로 한국인은 이곳에서 죽고, 다쳤으며 간혹 일부가 살아남았다고 하더라도 그 마음이 평온하지는 못했으리라.

박물관 직원에게 한국어로 된 영상을 틀어달라고 요청하면 10분 남짓의 영상을 틀어준다. AI 음성은 말투와 띄어 읽기가 다소 어색했다. 하지만 한국어로 전시 해설을 들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온 신경을 청각에 집중했다.

아이들은 전시물의 의미에 대해서는 별로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충분히 이해한다. 한국에서도 체험형 활동을 좋아했으니까. 하지만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져보고, 귀로 들어본 것들은 쉽사리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어느 나라가 이 땅을 지배했었는지 기억할 필요까지는 없다. 다만 사이판이 지금처럼 늘 고요하지는 않았다는 걸 알았으면 한다. 우리처럼 주권을 잃었던 적도 있고, 그 사이 고유문화가 많이 희석되기도 했다는 것을 설핏 알았다면 충분하다.

아이들은 원주민의 후손들과 함께 학교에 다니고 있다. 오늘 그중 한 친구가 큰아이에게 손수 만든 반지를 선물해주었다. 단추 모양의 납작한 구슬을 꿰어 만든 반지의 주홍빛이 참 화사했다. 큰아이는 씻기 전 반지를 탁자 위에 소중히 내려놓는다.

“볼 때마다 알라나가 생각날 거야.”


아이들은 작은 인연의 소중함을 어른보다 더 잘 안다. 교실에 잠시 머물다 가는 타국의 친구를 위해 예쁜 구슬을 하나하나 꿰었을 아이를 생각하니 마음이 그윽해졌다. 긴 곱슬머리, 갈색 피부의 알라나의 미소가 그려지는 듯하다.

현지 학교를 보내는 목적이 비단 영어 공부만은 아니다. 주어진 용돈으로 간식을 사 먹어 보는 것, 교실로 가는 길 만나는 낯선 친구들, 그리고 나에게 작은 선물을 나누는 친구까지. 이 모든 것이 졸린 눈을 비비며 이른 아침부터 학교로 향하는 이유가 된다.

#NMI Museum of History and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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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TIP

어디서나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줍디다. 작은 박물관을 제대로 활용하려면 직원에게 간단한 영어 해설이나 한국어 영상을 요청하세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쓱 훑고 나오면 무의미한 실내 산책밖에 안 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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