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판 한 달 살기 DAY17

틀리지 않았다는 안도감

by 최민정

또 까먹고 있었다. 큰아이가 한국인 친구와 해야 하는 과학 프로젝트 과제가 있다. 아이는 지난 주말에 자료 조사를 좀 하더니 그 이후에는 아무런 진전이 없는 상태였다.


“수민이랑 과학 숙제해야 하지 않아?”

“아 맞다!”


‘아 맞다?’ 안타깝지만 엄마를 화나게 하는 말이다.

당장 모레가 발표 날이다. 아이는 친구와 만나 어떻게 자료를 만들고, 발표할 건지 의논해 보겠다고 했다. 마감 이틀 전에 말이다. 유명한 작가가 되시려나.

다급하게 해낸 숙제는 엉성할 것이다. 자료조차 풍부하지 않아서 빈틈이 많을 것이다. 청강생의 신분이지만 그래도 한번 열심히 해 보겠단다.

두 아이는 수영도 마다하고 리조트 로비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엄마는 불필요하다고 했다. 아이의 친구는 태블릿 PC를 2개나 챙겨 왔다.

‘알아서 잘하겠지.’


아이 둘을 로비에 놓고 숙소로 올라왔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 아이를 데리러 로비로 내려갔더니 둘은 열심히 적은 발표 자료를 정리하는 중이었다. 엄마 앞에서 발표 연습을 할 테니 한번 들어보란다. 아이들은 사람들이 오가는 로비 한쪽에 나란히 서서 한 시간가량 준비한 원고를 번갈아 가며 읽어 내려갔다. 중간중간 막히는 부분이 있었지만 자신 있는 목소리였다.

[색깔은 음식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가?]라는 주제로 게시 보드에 자료를 정리해 적고, 그 내용을 아이들 앞에서 발표하는 것이다. 아이들은 인터넷에서 열심히 찾은 자료를 요약해 발표 자료를 완성했다.

생각보다 훌륭했다. 내용을 전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어떤 내용을 쓸지 고민하고, 자료를 찾아보고 번역기를 돌려 발표 대본까지 만들다니.


숙제는 아이들의 몫이다. 어떻게 해서든 자신이 만든 결과물이라야 의미가 있다. 아이들은 1시간 전보다 많이 밝아 보였다. 비록 수영장에 나가지 못했지만, 스스로 한 과제물에 대해 만족하는 듯했다. 아이들이 해결한 과제는 오래도록 즐거운 성공담으로 기억될 게 분명하다.


오늘 하교 시간에 이런 일도 있었다.

아이들 손을 잡고 학교 정문을 나서는데 작은 아이반 담임 선생님께서 하교 지도를 하고 계셨다. 아이는 선생님께 손 흔들며 ‘Bye’ 하는 게 아직은 어색한지 고개를 숙여 꾸벅 인사했다.

“He is very good. Very smart.”

선생님은 엄지를 추키며 아이를 칭찬했다. 아이를 향한 칭찬은 엄마를 춤추게 한다. 미국에서 받은 칭찬이라 2배쯤 더 달콤했다. 그냥 꾸역꾸역 하기만 해도 기특한데, 잘하고 있다니. 공부를 잘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태도에 대한 칭찬이라는 걸 엄마는 잘 안다.


“수업 시간이 제일 중요해. 선생님 눈 잘 바라보고.”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하는 잔소리다. 아이들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좋은 길로 이끌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선생님이다. 따라야 하고, 존경해야 한다.


처음 미국학교에 다녀 보기로 결정했을 때 염려가 되는 게 있었다. 사설 영어학원 문턱에도 안 가 본 아이들이 미국학교에서 영어 수업을 듣는다는 게 가능할지 의문이었다. 선생님의 말소리가 외계어로 들린다면 수업 내내 고역일 텐데.

아이들 유치원 때부터였다. 남들 영어 단어 외울 시간에 영어 만화를 더 많이 보게 했고, 시중에 쏟아지는 영어 문제집을 푸는 대신 다양한 영어원서를 읽도록 도와줬다. 비록 스펠링 시험 점수는 좀 우습지만, 아이가 미국학교에서 적응하기에는 나은 방법이었다는 확신이 생긴다.


아직도 학교, 식당 등 발길이 닿는 곳에서 우당탕우당탕하며 겪어내고 있다. 상대가 뭐라고 하는지 제대로 알아듣지 못한 채 웃기도 하며, 쉬운 사이판 길을 헤매기도 한다.

그래도 아이들의 노력과 웃음으로 둘러싸인 하루하루가 감사하기만 하다. 아이들을 키우는 나의 촌스러운 방식이 영 틀린 것 같지는 않아 안심이 된다.


아이는 늘 부모보다 낫다.


그런 아이들의 커가는 뒷모습을 멀리서 믿음으로 바라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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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TIP

하교 후 배고픈 아이들을 위해 간식을 준비해 주세요.

옥수수 : 전기밥솥에 옥수수 절반 높이로 물을 채우고 찌면 설탕 없이도 달콤한 간식 완성.

꼬치 : 새벽시장에서 숯불에 구운 꼬치를 넉넉하게 사서 냉동실에 얼려두세요, 먹기 직전 프라이팬에 구우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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