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판에도 닥친 기후 변화
“우리가 이 농장에 멋진 방갈로를 많이 지어놨는데, 2018년에 싹 다 무너졌어요.”
엊그제 만난 오케이농장 아주머니의 말이었다. 나무들 사이 방갈로는 이제 형체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뼈대만 겨우 남아 있었다. 2018년 10월 태풍 ‘위투’가 사이판을 관통하며 벌어진 일이었다. 그날 전 재산을 날렸다는 아주머니의 말이 내내 마음에 남았다.
“원래는 1년 내내 다양한 종류의 과일을 따 먹었는데, 기후 변화 때문에 열매가 잘 열리지 않을 때도 있어요.”
지구에 닥친 기후 위기는 천혜의 섬, 사이판에도 예외일 수는 없었다. 실제로 엊그제부터 오늘 오전까지 사이판에는 계속 비가 내리고 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퍼부을 때도 있고, 바람에 흩날리는 빗방울에 옷이 눅눅해지는 때도 있다. 사이판의 1월은 건기라고 들었는데, 3일째 여름 장마철처럼 지루한 비가 내리고 있었다.
한 달 내내 뜨거운 햇빛을 기대하고 왔다. 선크림도 종류별로 한 짐 싸 왔는데, 며칠째 하늘을 덮은 회색 구름에 우울한 기분마저 든다. 이런 따분한 비는 사이판과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
인간이 만든 온실가스는 대기를 뜨겁게 달군다. 대기의 열기 대부분은 바다가 흡수한다. 열기를 머금어 뜨거워진 바다에서 발생한 엘니뇨가 지구의 기후 변화를 초래하는 것이다. 폭우, 지진, 화산, 허리케인 등 자연재해라 불리는 것들은, 사실 인간이 원인을 제공하여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2019년 호주의 대형 산불이 떠오른다. 뜨거운 대기와 건조한 날씨에 산불은 거의 반년 동안이나 꺼지지 않았다. 2022년 아프리카 차드의 폭우로 인한 피해자는 100만 명에 육박했다고 한다. 이 또한 기후 위기로 발생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곧 다가올 기후 재앙은 더 자주, 더 끔찍한 모습으로 다가올 것만 같다.
사이판 건기와 우기의 뚜렷한 구분이 없어지고, 과실이 크기 전에 비바람에 떨어지며, 맑은 하늘의 별빛을 볼 수 있는 날이 많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슬픈 예감이 들었다. 지금 내가 본 사이판이 어쩌면 가장 좋은 풍경일지도 모른다는 오싹한 상상을 해 본다.
간혹 TV에서는 지구의 해수면이 상승하면 한강 변 집들이 잠기고, 세계 곳곳의 해안 도시는 지도에서 사라질 거라는 무서운 경고를 한다. 내가 아직 살아 있을 미래, 우리 아이들이 한창 꽃을 피울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그래서 더 무섭다.
아이들이 스노클링을 즐기는 태평양의 수온은 어쩌면 오늘이 가장 시원할 수도 있겠다.
하교 후 간식으로 즐기는 과일도 오늘 먹은 것이 가장 크고 맛있을지 모른다.
우리가 묵고 있는 리조트는 언제까지 물에 잠기지 않을 수 있을까.
의식주 모든 게 변할 것이다. 서둘러 탄소배출을 줄이지 않으면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뜨거운 고통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어두운 먹구름이 하늘을 가리는 날이 많아질수록 인간이 풀어내야 할 과제도 무거워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후 위기에 대해 이렇게 경고한 바 있다.
“신은 항상 용서하시고, 우리는 때때로 용서하지만, 자연은 절대 용서하지 않는다.”
*소소한 TIP
사이판은 분리배출을 하지 않아요. 하지만 관광지 곳곳에 쓰레기통이 있답니다. 쓰레기를 바다에 버리지 말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