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이판 한 달 살기 DAY23

교민들이 궁금해집니다.

by 최민정

그동안 사이판 곳곳에서 다양한 한국인들을 만났다. 과일 농장주, 법원 견학 인솔자, 숙박업을 하시는 분과 카페 사장님들까지. 그들은 각기 다른 일을 하지만 묘하게 닮아있었다.


아등바등 하지 않는 삶의 태도


과일 농장에 갔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주인의 표정이었다. 현지인과 이질감이 없을 정도로 새카맣게 탄 얼굴로 아이처럼 웃으며 우릴 반겨주었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좋은 환경에 두면 저절로 잘 크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이 행복하면 된다고 하셨다. 아마 부부의 삶을 만족시키는 것은 자연이었나 보다. 수많은 과수, 나무 위로 날아드는 새들, 그리고 농장을 오가는 사람들에 묻혀 충분히 삶의 만족을 느끼는 듯했다. 그 때문인지 옆 사람에게 전염될 정도로 기분 좋은 웃음이 끊이지 않았다.


원주민처럼 미국 정부의 금전적 지원을 받으며 풍요롭게 사는 건 아니지만 자신들이 원하는 땅을 선택해서 새콤한 열대과일과 뜨거운 햇살 속에 사는 부부는 지금이 좋다고 했다. 좋다고 말하지 않아도 가벼운 몸짓과 행복이 듬뿍 담긴 말투에서 삶에 대한 충만감이 전해졌다.


법원 투어를 기획, 인솔해 주신 분도 한국인이었다. 한국에서 대기업을 다니다 퇴직하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무작정 사이판에 정착하셨다고 했다. 큰아이는 미국 본토 의대를 진학했다고 한다. 무려 의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뭘 가르치셨냐고, 어떻게 하면 미국에서 의대 입학이 가능하냐고.


“여기는 자기가 다 알아서 해야 해요. 여행 가고 싶으면 일을 해서 돈을 모아야 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공부가 있으면 주도적으로 계획하고 실행해야 해요.”


내가 알던 ‘자기 주도’와는 결이 좀 달랐다. 스스로 계획해서 공부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스스로 계획한 여행을 위해 직접 돈을 벌만큼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는 것이다. 전공하고 싶은 분야에 대한 사전 준비도 자력으로 해야 한단다. 중학교, 고등학교를 이렇게 보내면 성인이 되기 전에 단단한 틀이 생길 것 같다. 내가 좋아하고 잘하는 것에 대한 믿음이 견고해지고, 실패해도 다시 도전할 수 있는 회복력이 절로 생겨날 것이다.

아이들은 믿는 만큼 자란다는 말이 맞았다. 확실한 건 아이는 엄마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엄마의 뜻이 과하면 오히려 아이의 성장에 방해가 될 수도 있다. 아이의 힘을 믿고, 곁에서 아이의 노력을 응원하는 일. 알면서도 실천하기 힘든 좋은 육아의 방향이다.


사이판에서 오래 머문 한국인들은 현지 사람보다 더 미국 사람처럼 살고 있었다.

내가 진정으로 행복한 일 찾기.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스스로 발견할 때까지 기다려주기.

힘든 일이 생겼을 때조차 가볍게 웃어 넘기기.

이것이 내가 짧게 본 그들의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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