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네 번의 제주도

by 최민정

첫 번째 제주도

제주도의 첫 여행은 비행기에 방점이 있다. 태어나서 비행기를 처음 타 본 스무 살이었기 때문이다. 막 수능을 끝낸 나는 대학 생활을 찬란하게 영위하던 노란 머리 친오빠, 그리고 두 번의 수능 뒷바라지를 마친 엄마와 난생처음 바다 위를 날았다. 벌써 20년도 더 된 일이라 기억나는 게 별로 없지만, 제주도 무경험자 셋이 바가지를 씌우지 않는 괜찮은 식당을 찾아 헤매던 땀은 잊히지 않는다.

여행 초보자의 눈엔 제주도는 그저 낯설고 까만 섬이었다.


두 번째 제주도

남자 친구와 함께였다. 남자 친구와 단둘이었다면 신혼여행 간 기분으로 제주 바다를 만끽했을 텐데, 정말 아쉽게도 우리 엄마와 셋이었다. 엄마가 대체 왜 낀 건지 그 연유는 도무지 모르겠지만, 아마 남자 친구와의 여행을 결사반대하던 엄마가 깍두기로 낀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이 또한 십수 년 지난 일이라 좀처럼 떠오르는 장면은 없지만, 여자 둘을 제치고 저만치 앞서가는 남자 친구의 애석한 발자취는 올레길 어딘가 남아있지 않을까.

여전히 제주도를 들여다보지는 못했다.

세 번째 제주도

결혼하고 운 좋게 귀여운 아이 둘을 얻었다. 남편과 그렇게 넷이 세 번째 제주도 여행길에 올랐다. 바야흐로 22년 9월 초중순. 뉴스에서는 태풍 힌남노를 대비해 외출을 자제하라고 권고했지만, 우린 감히 여행을 취소할 수 없었다. 방학, 휴가 일정을 간신히 끼워 맞춘 데다가 아이들은 한 달 전부터 들썩이고 있었기 때문이다. 쓸데없이 무모한 용기를 가지고 힌남노를 맞닥뜨리기로 했다. 그리고 넷은 제주공항 부근 스타벅스에 앉아 하염없이 날아가는 길가의 온갖 쓰레기를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 태풍이 오면 바닷가는 이런 모습이구나.’를 실감하면서.

네 번째 제주도

올겨울, 아이들과 한 번 더 제주도를 밟았다. 초행은 아니지만 여행 간격이 워낙 띄엄띄엄이라 익숙하지 않은 섬. 제법 큰 아이들과 재회한 제주도, 이번에는 소중한 추억을 선물해 주었다. 꽉 채운 나흘의 제주도는 내게도 많은 말을 건넸다. 그 이야기를 지금부터 해볼까 한다.

나는 사실 여행에 적합한 인간은 아니다. 계획적인 일상을 좋아하고, 편안해한다. 하지만 일 년에 두세 번 떠나는 여행은 불편하지 않은 자극을 준다. ‘이러면 좀 어때?’ 일상과 다른 하루하루는 새로운 이야기를 전하곤 한다. 그래서 제주도가 내게 무슨 말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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