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전거 여행

미지를 향한 도전

by 최민정

요새 자전거 여행이 붐이다. 우리 집에서 말이다. 자전거를 타고 한강 다리를 건너 여의도 공원에 도착해 라면을 먹고 오는가 하면, 책갈피 하나 사자고 자전거를 타고 광화문 교보문고에 다녀오고는 한다. 다 자전거를 타기 위한 핑계일 뿐이다. 집 근처에서 따릉이를 빌려 그날의 선도자를 뒤따라가며 보는 풍경이 매번 색다르다. 같은 길이지만, 계절, 요일 그리고 시간에 따라 다른 배경 속에서 라이딩하는 일은 전에 겪어보지 못한 재미다.


그래서 제주도에서도 자전거를 타보기로 했다. 떠나기 전날까지도 1월의 제주도가 자전거 여행을 허락해 줄지 의문이었지만, 다행히 운이 좋았다.

“해안가 쪽에 자전거도로가 제법 잘 돼 있어요,”


자전거 대여점 사장님은 지도를 펼쳐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알려 주셨다.

작은 리조트들, 각종 해산물을 파는 식당을 지나자 까만 현무암을 품은 쪽빛 바다가 펼쳐졌다. 조수석에 앉아 해안가 드라이브만 했다면 놓쳤을 진짜 제주의 풍경들이 하나씩 드러났다. 바닷바람에 나부끼는 한치를 보고 아이들은 오징어라며 신기해했고, 겁이 많은 둘째는 눈앞을 스치는 갈매기에 질겁하기도 했다. 나는 아주 느리게 페달을 밟았다. 90년대 아날로그 감성의 휴게소와 주인장이 직접 제작한 간판을 내건 카페를 천천히 눈에 담으며.

바닷바람에 밀려오는 냄새가 이국적이었다. 내가 정말 제주도에 다시 왔구나,라고 느끼고 있는 찰나 이상한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엄마, 쟤네는 왜 끼리끼리 놀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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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뉘엿뉘엿 서편으로 사라지는 늦은 오후라 사진이 또렷하지는 않다. 혹시 특이한 점을 발견할 수 있을까? 자세히 보면 새들은 무리 지어 따로따로 모여있다. 왼편에 검은색 무리, 오른편에 흰색 무리. 조류는 비행하거나 먹이를 찾기 위해 시각이 발달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과 같은 부류를 금세 아는 모양이다. 다른 모양과 색을 가진 무리는 ‘적’으로 여기는 걸까, 만약 하얀 새무리에 검은 새 한 마리가 날아든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3년 전, 나는 까만 새무리에 날아든 한 마리의 하얀 새가 된 적이 있다. 늘 집에서 양육과 살림만 하던 내가 어느 날 갑자기 동네 문화원에 있는 ‘수필 쓰기’ 수업에 참여한 것이다. 막연히 글쓰기를 배우고 싶어 찾아간 곳이지만, 강의실 문을 여는 순간 내가 여지없는 이방인임을 알았다. 앉아계신 수강생 모두 엄마와 동년배쯤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신입생이란 이유로 앞에 나가 자기소개를 할 때만 해도 내가 여기서 얼마나 머무를 수 있을까 걱정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제 이야기를 글로 표현하고 싶어서 수업 신청을 하게 된 ㅇㅇㅇ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매번 교실 문을 여는 것 또한 큰 용기가 필요했다. 내가 과연 이분들과 같은 길을 갈 수 있을까.

몇 번의 글쓰기와 합평을 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분들은 적어도 수년을 계속해서 글을 쓰셨겠구나. 글에서 묻어나는 습작의 흔적, 한 문장을 쓰기 위한 각고의 시간이 저절로 그려졌다. 행운이었다. 내가 여러 스승께 배울 게 무궁무진하다는 걸 짐작했기 때문이다. 애석하게 몇 달 후, 어린이집에 취업하는 바람에 오랜 기간 수업에 참여하지는 못했지만, 글쓰기 수업을 수강한 일은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분들과 친구처럼 이야기를 나누며 간식을 나누어 먹고, 내 글에 대해 날카롭지만 따스한 조언을 얻은 일들. 내가 까만 새 무리에 들어가지 않았더라면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비행기는 이륙할 때 전체 연료의 약 70%를 쓴다고 한다. 그만큼 새로운 곳에 닿기 위해선 에너지가 많이 필요하다. 낯선 경험을 위한 도전에는 에너지가 쓰이지만, 상공을 가르며 지난 길 위에서 더 많은 것들을 담을 수 있기도 하다. 나처럼 뜻밖에 친구를 만날 수 있고, 인생에 필요한 지혜를 알게 되는 경우도 있다.

이륙에 대한 확실한 보상이다.

늘 비슷한 환경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건 사실이다. 끼리끼리 모여있는 하얗고 까만 새들처럼. 하지만 가끔은 나와 전혀 다른 색의 사람과 공간을 찾아 이륙해 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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