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귤나무는 집집마다 있을까

따뜻한 1월의 제주도

by 최민정

#성산일출봉에서 내려오는 길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기념품 가게 앞을 지났다. 빨간 바구니에 담긴 샛노란 노지귤 색이 예쁘다. 무채색 겨울 풍경에 노란색은 저절로 시선을 끌게 마련이다.


“안녕하세요, 이거 한 바구니만 주실래요?”


내 옆에 찰싹 붙어있던 아이들도 덩달아 꾸벅 인사를 한다. 아주머니는 아이들에게 따뜻한 눈길을 주시더니 가게 안쪽에 있던 노란 상자에서 귤을 잔뜩 내오셨다.


“이거 따면서 좀 흠집 난 건데, 먹는 데 아무 지장 없어요. 진짜 맛있어 우리 귤.”


몇 번의 덤을 더 주시고서야 봉지를 건네셨다. 겨우 5천 원으로 이렇게 많은 인심을 얻어도 되나 민망할 정도였다. 차에 앉자마자 귤을 까먹어 본 아이들은 연신 감탄이다. 서울에서 먹던 귤도 분명 제주산이었을 텐데, 유독 더 달고, 더 새콤한 건 아주머니의 후덕한 마음씨 덕분이었을까.


#자전거 대여점에서

성산일출봉 근처에 자전거 대여점이 있었다. 날씨가 허락하면 반드시 해안가를 따라 자전거를 탈 계획이었기에 하산 후 소진된 체력이었지만 자전거를 빌리러 갔다. 각자 자전거를 택해 어느 길을 따라 라이딩할지 고민하던 중 주인아저씨가 손에 귤을 쥐어주셨다.


“이거 저희 귤인데, 한번 잡숴봐요.”


첫째가 그 자리에서 귤을 까먹자 아저씨 얼굴에 화색이 돈다.


“아이고, 이 집 딸이 귤을 좋아하나 보네. 몇 개 더 줘야겠다.”


아이들 주머니에 귤을 그득 담아주시고 생수까지 챙겨주셨다. 제주에 온 첫날, 이미 손가락 끝이 노래질 정도로 귤을 까먹고 있었다. 제주 동쪽에서 숙소인 서쪽으로 가는 길엔 얕은 돌담 너머 집들이 보였다. 그리고 꽤 많은 집 마당엔 귤나무가 있었다. 우리 시골 동네 집집마다 감나무가 있듯, 우리 단지 곳곳에 단풍나무가 있듯, 그곳엔 노란 귤을 매단 1월의 제주도가 있었다.


제주도엔 정말 집집마다 귤나무가 있다,라는 말는 과장된 소린 줄 알았다. 천천히 동네를 지나다 보니, 그 말이 영 틀린 것 같지 않다. 한 집 건너 한집마다 귤나무가 있고, 돌담 너머 밖으로 삐져나온 가지에 달린 귤은 행인 누가 따먹어도 모를 것 같았다.

길바닥에 널린 게 귤이라 가치가 없어서일까. 흔하다고 해서 나눌 수 있는 건 아니다. 부자라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크지 않고, 배움이 많다고 해서 타인을 이해하는 폭이 크지 않다. 그들이 상자에서, 주머니에서 나누어 준 귤은 차고 넘쳐서가 아니었다.


‘제주도에 왔으면, 진짜 맛있는 귤 한번 먹고 가야죠.’


외지에서 온 손님에게 가장 맛있는 음식을 건네주는 제주도의 마음이 아니었을까. 마침 귤이 가장 맛있는 철에 방문했고, 겨울 섬에 살고 있는 그들에게 먼저 따뜻한 웃음을 보여서였을까. 그날 저녁까지 계속 까고 까도 남아있는 귤 덕분에 숙소 냉장고는 노랗게 가득 찼다.


나는 그랬을까?

누군가에게 이유 없이 나눔을 베푼 적이 있을까?

1월의 제주도를 닮은 따뜻한 성품을 갖고 싶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들을 떠올려본다. 그중 소중한 것들을 나눌 수 있는 마음이 익어가길 기도해 본다.


제주도엔 집집마다 귤나무가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곳곳에 나눔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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