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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mlico May 18. 2022

게으름은 인류의 생존 전략이(었)다!

게으름은 몸과 마음이 보내는 생존을 위한 명령이다. 마음 편히 받아들이자

진화론적으로 생각해보면 경쟁에서 살아남은 현 인류는 굉장히 부지런하고 철두철미한 성격으로 진화되었어야 한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이 작심삼일을 반복하고 게으름을 원할까? 왜 계획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것일까? 왜 매년 실패에 대한 후회와 반성을 반복하는 것일까?


생각해보면 '게으름'은 상대적이고 사회적인 단어다. 인류가 정착하여 농사를 짓기 시작한 농업혁명 시기부터 주종관계가 형성된 봉건사회를 거쳐 도시화가 진행되기 시작한 산업혁명 전까지 인간은 협동을 통해 살아남아야 했다. 즉, 친족 중심의 경제 공동체 단위로 농업 혹은 상공업 생산성을 향상시켜 생존 시스템을 유지해야 했기 때문에 상대의 게으름은 곧 내 삶의 위협을 의미했다. 따라서 게으름은 종교적인 교리에서도 사회적인 규범에서도 옳지 못한 행위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로마시대의 귀족부터 자본주의 시대의 부유한 자본가들까지 덜 일하고 더 벌어서 더 누리며 사는 것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이었다. 문제는 부의 축적은 소수의 계급이나 계층에게만 허락된다는 점이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문명이 형성되고 사회의 규칙이 만들어지면서 자연적인 감각과 원초적인 본능은 잊고 사회문화적인 시스템에 의존하여 살아가야 했다. 생존을 위한 휴식과 소비(육류 섭취 등)를 죄악시하고 근면과 성실과 검소한 삶을 최고의 가치로 치켜세웠다. 이것은 종교에서 국가의 산업적 규범으로 확장해나갔다. 독일의 사회학자인 막스 베버의 연구들이 이를 뒷받침한다.


산업혁명이 처음 등장한 영국에서 역시 세계 최초로 노동법이 만들어졌고 적극적인 정치참여를 위해 1900년도에 노동당(자본가를 대표한 보수당은 1834년)도 조직되었다. 1867년에 칼 마르크스는 맨체스터 공장에서의 참혹한 노동현장을 지켜보고 당시의 자본주의 생산시스템을 이론적으로 정리 및 비판한 자본론을 집필했다.  


영국의 노동법(근로기준법)은 산업 자본가들의 착취에 의해 아동을 포함한 많은 노동자들이 열악한 작업환경과 살인적인 노동량으로 목숨을 잃고 희생된 결과였다. 이 노동법에 담긴 주요 사항은 바로 노동자들의 "근로시간 제한""휴식의 보장"이었다. 1871년에 Bank Holiday Act가 법률로 제정되면서 법정 공휴일의 개념이 처음 생겨났고 당시 저렴한 이동이 가능한 철도가 설치되면서 노동자들은 여행이라는 새로운 레저문화를 즐길 수 있었다. 얼마 전인 2019년에 파산한 영국의 토마스 쿡 그룹도 이러한 분위기에서 1841년에 설립된 세계 최초의 여행사였다.


노동법은 노동자들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사회 정치적으로 만들어진 근현대의 최소한의 보호장치다. 하지만 이미 그전에 인간은 휴식을 통해 제한적인 에너지를 비축하고 과로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기 위한 "게으름"이라는 생물학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있었다. 따라서 휴식과 게으름을 부정하는 것은 수십만 년간의 인류의 생존 노하우를 무시하는 것과 같다. 건강하게 살아가려면 게을러지고 싶은 몸의 신호를 인정하고 실천해야 한다. 다만 현대의 빠르게 양극화되어 가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휴식하는 동안에도 수익을 발생시킬 생산수단이 없다면 게으름은 가난을 가져올지 모른다. 인생이 원래 모순의 연속이라고 생각하며, 오늘도 나는 내 게으름을 자책하며 이 글을 통해 작은 위안을 삼아 본다. 언제 마음 편안하게 게으름을 실천할 수 있을까?


생맥 한잔을 하면서 쉬려면 맥주값을 벌기 위해 쉬지 않고 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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