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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imlico May 20. 2022

마스크로도 가릴 수 없는 한국인의 외모지상주의

[한국사회 다시 바라보기] 살인적인 경쟁, 팬데믹 그리고 외모지상주의

한국사회가 코로나에서 점점 벗어나면서 나타나는 흥미로운 현상은 "마기꾼 효과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한국인들(물론 나를 포함)은 왜 이리도 타인에게 보이는 외모에 집착하는 것일까?


영국 사회에서는 코로나 초기에 마스크로 얼굴을 가림으로써 대화에서 감정표현이 제한되거나 오해를 살 수 있는 상황을 굉장히 두려워했었다. 이런 이유로 마스크를 쓰는 것에 대한 극도의 거부감이 있었고 마스크 대신 얼굴이 투명하게 보이는 페이스 실드를 선택한 사람도 꽤 많았었다. 옥스퍼드 영영사전에는 mask의 동사형 의미를 '감정, 냄새, 사실 등을 숨기고 감춘다'는 부정적인 뜻을 담고 있다. 영국 사회의 민주주의에서 투명함과 진실성(integrity)이 굉장히 중요한 가치인 점을 고려하면 영국인들이 개인의 감정 및 의사표현을 방해하는 마스크를 왜 쓰기 싫어했는지도 이해가 된다. 특히 기독교 기반의 유럽 사회는 개인이 떳떳하다면 굳이 가릴 필요가 없다는 기독교 교리의 영향 때문에 밤에도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거실을 커튼으로 가리지 않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반면에 한국은 꾸미지 않아도 되는 안도감과 코와 입을 가려 잘 생겨져 보이는 효과에 사기꾼이라는 웃픈 프레임을 씌우기 시작했다. 또한 마기꾼 소리를 들을까 무서워 못 벗는다는 사람들도 다수 존재한다. 한국은 이웃국가인 일본과도 비교될 정도로 철저한 관계중심의 사회다. 심지어 회사에서 점심을 먹더라도 상대의 메뉴에 따라 본인의 메뉴 선택에 영향을 미칠 정도다. 그래서 "뭐 먹을래?"라는 일상적 언어에는 많은 사회문화적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비슷한 맥락에서 첫인상에 대한 결과는 개인 간의 관계에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전략적 대응을 위한 중요한 정보로 인식된다. 많은 한국인들이 관상가 뺨칠 정도의 첫인상에 대한 지식과 분석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반대로 외모를 가꾸는 것은 이성에게든 직장생활에서든 관계를 통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 위한 핵심전략으로 떠올랐다. 이러한 문화는 한국을 세계적인 성형 제국이라는 오명을 씌우는데 이바지하기도 했다.   


전통적인 한옥의 방 문화는 개별의 고정된 기능을 가진 서양의 room과는 다르게 하나의 방을 유연하게 서재, 침실, 식사, 거실 등의 용도로 활용해왔다. 상을 펴면 식사공간이 되었고 책상을 펴면 업무공간이 되었으며 이불을 펴면 침실이 되었다. 또한 마치 트랜스포머처럼 문을 위로 젖혀 공간을 연결하고 풍경을 담아내고 바람을 통과시키는 등 공동공간의 기능을 강화하기도 했었고, 반대로 문을 막아 사생활을 보호하기도 했었다. 이처럼 과거 관계중심의 한국사회는 굉장한 유연함을 보여줬고 국난의 상황에서는 이에 맞게 각자의 역할을 유연하게 변화 및 설정하여 극복할 수 있는 원동력(의병활동, 국채보상운동, 금 모으기 등)이 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급격하게 변화하는 산업화 및 자본주의가 진행되고 살인적인 경쟁사회에 진입하면서 개인은 각자의 사회경제적 생존을 위해 관계의 네트워크(소위 인맥 등)를 자의적으로 왜곡하여 해석하기 시작했다. 사회적 지위(social status) 형성에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어지는 전략적 외모 가꾸기(성형, 패션 등)를 통해 외모지상주의 사회로 변해가기 시작했다.


현재 사람 간의 관계의 팁(대화기술, 마음가짐, 이성관계 등)에 대한 많은 커뮤니티 사이트 글에는 "잘생기면 다 해결된다"라는 댓글이 언제나 추천수 상위를 차지한다. 심지어 개인의 재력보다도 상위에 위치한다. 상대적 관계중심의 한국사회에서 외모는 언제나 관심의 중심에서 관계를 역으로 왜곡시켜 본질을 약화시킨다. 외모를 통해 관계 기반의 경쟁에서 승리의 기회를 잡을 수 있다는 역전에 대한 강한 믿음이 존재한다. 외모 가꾸기가 개인의 노력의 범주에 포함되면서 이것은 일종의 스펙으로써 더욱 전략화 되었다. 따라서 코로나 상황에서 마스크로 외모를 가렸음에도 외모에 대한 관심이 더욱 높아진 것은 한국사회의 모순된 현실을 방증한다. 우리는 언제쯤 외모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상대를 제대로 바라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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