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에게나 빛나는 순간은 있다. 지금이 그 순간일지도? 아무도 모른다.
그 해 겨울은 몹시 추웠다.
설렘과 두려움을 마음에 담고,
집을 나섰다.
블랙 꼼데가르송 원피스와 코트를 잘 차려입고 새초롬한 표정으로 첫 출근을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파란만장한 서사가 기다릴 것이라고 생각이나 했으랴.
나중에 듣게 되었지만,
대부분 나의 첫 출근 때의 내 모습을 기억했다.
그들은 그 모습을 첫인상으로 나를 담았고,
나 역시 전의(?)를 다지며 내가 가진 기지와 깡으로 매 순간 안간힘을 쓰며 사력을 다했다.
빛났으면서도,
추할 정도로 비겁하기도 했고,
지혜를 배우며 성장을 했지만,
쓸데없는 치기(稚氣)도 배웠던,
압도적인 나의 커리어의 무대가 바로 W Story이다.
(수많은 에피소드는 약간의 허구를 담아 소설화할 것을 다짐하며 아낀다.)
이렇게 설레는 시작으로 수많은 에피소드를 만들었던 이곳은 성장과 반전으로 점철된 이력이다.
한 때는 빛나게 했지만,
그 빛이 독이 되어 경계해야 하는 겸손을 잃고 나를 표류하게 했던 나의 고백이다.
이 같은 배경에는 2가지 이유가 있다.
그때도, 지금도
일이 나의 일상이었고 일상이 곧 나의 일이었다.
가끔 생각했었다.
일상으로 돌아온다 한들, 일의 상념이 단절될 수 있나?
물리적으로 멀어질 순 있어도,
머릿속에선 좀처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워커홀릭' 뭐 이런 식상한 비유는 아니다.
그저 주어진 일의 시간만 그친다면,
그 시선과 시야가 '다음'을 비집고 나오게 할 수 없기에 기꺼이 성실하게 열심히 하고자 했던 것뿐이다.
팀장님, 보면 진짜 '일을 즐기면서 한다'라는 게 뭔지 알 것 같아요.
내가?! 진짜 그래?
언제였나.
팀원과 이러한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겉으론 “내가?! 그렇다고!?” 답하였지만,
사실 지금까지 내가 들었던 팀원들의 그 어떤 말보다 보배같이 귀한 진심이 느껴졌다.
당시는 너무나 힘들고 지치는 사건 사고들이 너무 많아서 ‘이판사판 공사판‘까지 갔다 오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짜증과 분노로 폭주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 말이 고마웠고,
내가 이 일을 얼마나 애정하는지도 다시금 돌아보게 하기도 했다.
나의 마음가짐과 열망은 태도로 드러나고,
높고 낮음의 상관없이 모두에게 보이는 것을 그때 알았다.
어쩌면,
지금 당신의 모습 역시 누군가에게 읽혔을 것이고, 읽고 있을 수도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나 역시 인정의 욕구에 애단 사람이 맞다.
나를 믿어주었던 대표가 있었다는 것.
이것은 나의 밑거름이 되어,
폭풍 성장을 도모하였다.
‘사업’ 단위로 큰 줄기에서 작고 미세한 라인까지 잡아가는 플랫폼 비즈니스 특성상,
나는 가시적인 성과를 드러낼 수 있었다.
새로운 사업 모델을 추진하여 안착시켰다.
회사의 새로운 수익 모델이자 매출원의 라인업으로 확장하며 나는 계속 두각을 나타냈다.
회사 안에서 뿐만 아니라 얽혀있는 산업의 관계자들에게도 인정이 넘쳤다.
활보에 가까웠던 행보는 거침이 없었으며,
나 역시 인정받고, 산업과 회사에 기여한다는 독에 취해 미친 듯이 일을 했다.
하. 지. 만
몇 년 후 나의 기백은 ‘사업 - 동업’이라는 얼개로 엮이면서, 매듭을 푸는데 성장통을 겪어야 했다.
끊임없는 자문자답 속에,
다행히 지금 그 답을 여기서 찾았다.
왜 그 당시에 그 선택을 했는지.
이 질문을 꺼내기 조차 두려웠다.
후회할까 봐.
시간이 흘러 지나가기만을 바랬다.
얼마의 시간 이후엔
‘또 뭔가 해냈구나.’라고 덮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나에게 치기였던 것이다.
—
그 시간 속에선,
내가 어떠하였는지도,
어떤 의미룰 가진 때였는지도 아무도 모른다.
나도 몰랐으니까.
어떤 일이든
어느 곳에서
어떤 모양새로
무언가 하다 보면
언젠가 아주 가끔 뒤돌아볼 때
그때 빛났던 나를 꼽을 수 있는 순간을 맞이한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시간의 개념을 2가지로 구분했다고 한다.
크로노스 chronos와 카이로스 Kairos 가 그것이다.
두 가지의 차이는 시간의 주체에 따라 나뉜다.
크로노스는 모두에게 주어진 시간이다.
시쳇말로,
‘누구에게나 24시간은 주어진다.’
라는 말로 일축할 수 있다.
따라서 주체는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된다.
태어나고 죽기까지,
시작과 끝,
과거에서 현재,
현재에서 미래,
이처럼 일정한 속도와 방향으로 흘러가는 연속된 시간이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동일하게 적용되는 시간이다.
카이로스는 기회 또는 특별한 시간을 말한다.
한 개인이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의미를 부여하는 주관적인 시간이다.
신화의 이야기와 버무려 요약하자면 이렇다.
시간을 나의 의미로 가져와, 나에게 오는 위험을 알아차리고, 멈출 때를 알아야 한다.
기회가 앞에 있을 때,
부족하지 않게 단단히 채운 나의 저울을 들고 정확히 판단하며, 주저함 없이 단호한 결정의 순간을 맞이하라.
결국 과거의 빛이든 현재의 빛이든,
시간의 주인은 '나'여야만 한다.
그 시간 속에서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시간, 즉 카이로스의 시간이다.
겸손과 인연.
우리는 빛 속에 겸손한 성품을 잃지 말아야 한다.
늘 그 단어를 마음에 새기고, 견지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참으로 오만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연을 잃지 않은 게 새삼 신기하다.
나는 이번주에 반가운 얼굴을 보기로 했다.
W Story와 사업-동업 사이에 있었던 나의 대표를 만난다.
그때 너무나 급하게 떠나버려서 미안했고,
그때 미처 대표 당신을 알려고 하지 않고, 나를 계속 알아달라고 했던 걸 이제야 알았다고 얘기해 주려고 한다. 그리고 고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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