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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든 Feb 26. 2023

소멸하는 한국, 스타트업의 의미

출산율 0.78명, 스타트업 고용 증가율 9.78%

절망을 넘어 무망의 시대에 진입한 한국 사회에 청년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스타트업에서 일한다. 혹은 일하고 싶어한다. 유일하게 효능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 스타트업 문화이기 때문이다.

얼마전 한국의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역대 최저를 찍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한국사뿐만 아니라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 보기 힘들 정도로 낮은 수치에 여러 외신도 놀라 이 소식을 보도했다.


유튜브 영상을 보면 초저출생과 대한민국 소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비관을 넘어서 냉소로 바뀐 지 오래다. 이제는 블랙 휴머로까지 진화했다. 자신을 가장 현명한 세대라며, '노예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반항은 노예를 낳지 않는 것'이라고 자기 고양에 심취해 있는 듯하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댓글도 많이 보인다. 분노는 희망이 있을 때나 내는 사치다.


0.78이라는 수치는 절망도 아닌 무망에 가깝다. 대한민국을 마치 없어져도 문제될 게 없는 인터넷 서비스처럼 풍자하는 댓글은 이러한 태도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이런 댓글은 아마 2-30대가 남겼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면 이런 청년들은 정말 손놓고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것일까? 대한민국이 망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아니다. 그들은 스타트업에서 희망을 찾는다.


중소벤처기업부가에 따르면 작년 스타트업 고용자수가 9.7%(6만7605명) 늘어났다고 한다. 같은 기간 우리나라 전체 고용보험 가입자 증가율 3.3%에 견줘 3배 가량 높은 수준이다.


통계가 아닌 일상을 봐도 한국인의 삶은 스타트업이나 IT 기업의 서비스로 시작하고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해외 거대 테크 기업의 서비스가 아닌 국내 고유 기업의 서비스를 주로 쓰는 나라는 한국을 빼면 몇 개 없다. 대학생이 가장 취업하고 싶어하는 네카라쿠배당토, 직야몰두센, 심지어 최근에는 마에그원이 일상을 지배한다. 뜻이 있고 능력이 있는 젊은층은 멋진 IT 기업이나 스타트업에서 일하길 갈망한다. 스타트업은 항상 세상을 바꾼다는 매력적인 슬로건을 내걸며 기존의 법칙을 깨부수리라 다짐한다.


하지만 그들도 안다. 스타트업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사소한 편리함이다. 편리함과 행복함은 다르다. 한국인의 삶은 그 어느나라보다 편리하다. 한국인은 외국에 갔다오면 한국이 얼마나 살기 편한지 주구장창 얘기한다. 택배를 시키면 내일도 아니라, 내일 새벽, 심지어 당일에도 오고, 대중교통이 깨끗하고 잘 되어 있다며 잠시 국뽕에 심취한다. 그러나 마음으로는 찔린다. 한국이 살기 너무 편리해서, 그래서 결국 더 살기 행복하다는 말을 차마 입밖에 꺼낼 수 없기 때문이다. OECD 국가 중 삶의 만족도, 사회적 신뢰도가 최하위권이라는 뉴스도 이미 지겹도록 들었을터다.


이는 절대로 스타트업의 가치를 폄하하거나 비난하려는 의도가 아니다. 그래도 스타트업이 내거는 비전은 과장이다. 이런 서비스는 세상을 바꾸지 않는다. 그저 일상의 일부분을 조금 더 편리하게 해줄 뿐이다.


물론 그것마저도 매우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지금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거나 필요한 일은 아니다. 우리가 정말 필요한 건 또 다른 앱이나 서비스가 아니다.


중요한 건 스타트업을 창업하거나 스타트업에서 일하려고 하는 청년 모두 이러한 사실을 안다는 점이다. 다만 비상한 머리와 넘치는 열정을 가진 청년들은 '진짜' 문제에 엄청난 답답함을 느낀다. 출산율이 이렇게 떨어지도록 방치한 사회에 실망한다. 살인적인 경쟁, 물질주의적 문화, 남과의 끊임없는 비교, 사교육, 수도권 집중 문제, 부동산 문제 등등, 무엇을 하려고 해도 어디서 부터 어떻게 해야 할지 어두컴컴하다. 모든 문제가 구조적이며 경로 의존적이다.


이런 청년들에게 스타트업 문화, 즉 IT 서비스 및 제품을 만드는 신생기업의 업무방식과 문화는 너무나 반가울 수밖에 없다. 문제와 목표를 명확하게 정의할 수 있으며, 구체적인 수치로 성패를 목격할 수 있다. 진짜 수평적인 문화를 가진 회사에서 동료들과 치열하게 토론하며 때론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성장할 수 있다. 주도적으로 프로젝트를 이끌고 빠른 호흡으로 결과물을 만들어낼 수 있다.


수많은 이해관계자가 얽히고 설켜 있으며, 그 궁극적인 목적마저도 추상적인 사회 문제와는 너무 다르다. 특정 사용자층이 아니라 모두를 챙겨야 하는 정치와는 너무 다르다. 만드는 데도 너무 오래 걸리며 만들어도 욕만 바가지로 먹는 정책과는 너무 다르다. 국민을 섬겨야 하는 소비자로 보지 않고 투표로 보는, 권력욕에만 눈이 먼 것 같은 정치인에 비해 스타트업 창업자와 일론 머스크는 훨씬 더 유능하고 대단해 보인다. 오바마 같은 정치인에 비하면 그들은 뚜렷한 결과물을 냈다. 심지어 그들의 결과물을 우리가 쓰고 있다.


가만히 앉아 사회를 개탄하는 대신 스타트업 생태계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려는 한국의 청년 세대는 칭송받아 마땅하다. 당연히 그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다. 하지만 AI가 업무를 보조하고, 송금과 대출이 편리해지고, 영어 교육이 편해지고, 모든 것이 배달 가능해지고, 모든 것이 대여, 구독이 가능해질수록 마음 한 쪽이 공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이런 편리함이 한국 사회를 바꿀 수 없음에도 거창한 비전을 내걸 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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