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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이든 Jan 30. 2023

불합리한 불합격 통보

착한사람 증후군의 권력

지원자에게 불합격 통보는 쓰다. 어디서 보나 어떻게 보나 결과는 같다. 어차피 불합격이라는 말인데 뭐 이렇게 돌려서 말하나 싶다.


하지만 채용 담당자에게 불합격 통보란 어떨까? 인터넷에 '불합격 통보 쓰는법'을 검색한 다음 '귀하의 능력은 출중하나 선발하는 인원에 제한이 있어...'라는 말을 반복하는 순례일뿐일까? 


최근 그나마 창의적인 불합격 통보를 봤다. '회사가 더 성장했으면 지원자님을 뽑을 수 있었을텐데...'라며 회사의 부족함으로 탓을 돌리는 식이었다. 


앞서 말했듯이 어떻게 말하든 지원자에게 불합격은 불합격이다. 하지만 회사가 더 성장했으면 지원자님을 뽑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변명 아닌 변명은 처음으로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구구절절한 명색이 아닌 구색있는 명분으로 느껴졌다. 지원자가 자신을 정당화하기 너무 좋은 이유가 아니던가. 아 그래. 회사가 아직 작아서 나에게 일을 가르칠 여력이 없구나. 요즘 같이 취업하기 힘든 때 '중고 신입'을 뽑았겠구나. 


어차피 불합격 통보에서 구체적인 이유를 바랄 수는 없다. 그건 너무 비싼 피드백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회사가 아직 작아서 다른 지원자를 뽑을 수 밖에 없다고 말하는 겸손한 통보는 오히려 더 불합리하다. 착한사람 행세를 할 수 있다는 건 곧 권력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낮출 수 있다면 그만큼 아쉬운 게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어차피 지원자는 한 번에 여러 곳에 지원하는 데 모든 곳에 붙을 수는 없다. 떨어지는 게 당연하다. 차라리 능력이 부족하다고 딱 잘라 말하는 게 공정하다. 모든 회사에 붙을만한 능력을 갖춘 귀재는 어디에도 없다. '경험 부족', '인터뷰 답변 미숙', '훨씬 더 잘하는 지원자 있음'. 아님 그냥 '탈락'. 


단순무식한 솔직함은 그 순간 더 세게 다가오지만 언제 그랬냐는듯 스르르 흩어져버리고 만다. 반면 완곡어법은 진심을 담더라도 사람을 더 비참하게 만들 때가 있다. 그 겸손함, 그 느긋함, 그 사려(思慮)가 사라지지 않고 뇌리 속에 스며든다. 너무 불합리하다. 


채용 담당자여, 이제 착한 사람 행세를 위한 검색을 그만해도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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