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애플 사용자 모임(아사모)’에서 활동해온 10년 차 애플 분석가 tecialist입니다. 오랜 시간 네이버 카페에서만 활동해왔는데, 앞으로는 브런치에도 글을 함께 올리며 좀 더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아이폰 16e는 실패작일까? 애플의 위기와 혼란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
https://brunch.co.kr/@mjh483/8
지난 글에서는 왜 16e가 가성비 최악의 아이폰인지 분석해봤습니다.
이번에는 한 발 더 들어가서, 애플이 왜 이런 제품을 출시할 수밖에 없었는가를 한 번 나름 논리적으로 추측해보려 합니다.
※ 환율 문제를 배제하기 위해, 미국 출시 가격(USD 기준)으로 이야기하겠습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이 점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애플은 이제 스티브 잡스 시절의 애플과 완전히 다른 회사입니다.
-팀 쿡이 CEO이긴 하지만, 절대적인 결정권자는 아닐겁니다.
-수많은 팀과 부서들이 각자의 목표와 이익을 두고 복잡하게 얽혀 있는 거대 기업이 아닐까요.
-그래서 제3자 입장에서 너무나도 답이 뻔한, 합리적인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수도 있습니다.
-내부적으로 각 팀이 협력하기보다는 서로 조율하고 타협하는 과정에서 이상한 결정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아이폰 16e도 이런 복잡한 내부 역학 속에서 태어난 ‘타협형 제품’일 수 있습니다.
아이폰 SE (3세대)는 2022년에 출시됐지만, 실제로는 2018년 아이폰 8의 우려먹기였습니다.
-디자인부터 내부 부품까지 거의 99% 아이폰 8과 동일했기 때문에 제조 단가를 크게 낮출 수 있었습니다.
-미국 출시 가격이 $429였고, 최신 고성능 A15 칩을 탑재했음에도 불구하고 큰 원가 절감이 가능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최신 A 시리즈 칩 넣으면 원가 올라가는 거 아냐?”
-애플은 매년 수억 대의 아이폰을 찍어내기 때문에, 최신 A 시리즈 칩을 탑재한다고 해서 비용이 크게 증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최신 칩을 사용하면 연산 성능이 좋아져서 구형 카메라 센서라도 computational photography를 활용해 사진 품질을 개선할 수 있습니다.
-즉, 애플 입장에서는 최신 칩을 넣는 것이 비용 절감에도 유리한 선택이었습니다.
이런 조건들이 기적적으로 맞아떨어졌기에, SE 3 같은 초저가 아이폰이 가능했던 거죠. 하지만 이런 재탕이 더 이상 안 통하는 상황이 온겁니다.
3. 2025년, AI 열풍이 애플을 덮치다
애플은 AI 경쟁에서 완전히 뒤처져 있습니다.
- 2023년부터 생성형 AI 시장이 폭발했지만, 애플은 이 변화를 전혀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 결국 Apple Intelligence를 준비할 시간도 부족했지만, 그렇다고 출시를 미룰 수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애플이 급하게 설계한 온디바이스 AI 시스템은 최소 8GB RAM이 필요했습니다.
--> 심지어 2023년 출시된 아이폰 15조차 RAM이 6GB라서 AI 지원이 불가능한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애플 AI는 사용자 데이터를 직접 학습에 사용하지 않지만, 최소한의 사용 통계는 필요합니다.
-모든 AI 기술은 기본적으로 더 많은 사용자가 있어야 빠르게 발전합니다.
-애플이 AI를 제대로 확장하려면 훨씬 더 많은 아이폰에서 Apple Intelligence를 지원해야 했습니다.
이제 애플 내부에서는 "AI 도입을 늘려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럼 Apple Intelligence가 더 많이 기기에서 쓰이게끔, 더 많은 사용자가 접근하기 쉬운 더 저렴한 아이폰이 필요했죠.
-마침 아이폰 SE 3의 후속작이 나올 시기였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저가형 아이폰"을 만들 방법이 없었습니다.
더 이상 비용 절감이 어려운 이유
a. Face ID는 필수 → 2017년 기술이지만 여전히 복잡한 센서 구조로 인해 제조 단가 절감이 어려움
b. LCD 대신 OLED 탑재 → Face ID를 위한 노치형 LCD 패널을 더 이상 공급받을 수 없어서 가격 상승 (XR, 11처럼 노치 디자인의 아이폰 LCD 패널을 공급했던 제조사(재팬 디스플레이)가 생산라인을 철수했다고 합니다)
c. 카메라 업그레이드 → 2025년에 이제 12MP 카메라도 우려먹는 것이 어려워 48MP로 변경 (원가 상승) (다만 12 시리즈 급의 작은 센서를 사용해 원가를 절감한 것으로 추정)
d. RAM 절감 불가능 → 생성형 AI가 없었다면 6GB RAM을 탑재했겠지만, Apple Intelligence 지원을 위해 최소 8GB 필요
즉, 애플이 원가 절감을 할 수 있는 여지가 거의 없었습니다.
-애플은 2025년이 되어도 "저가형 아이폰"을 내놓을 기술적, 사업적, 제조 설비적 준비가 전혀 안 돼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대체 왜 출시했냐?
a. Apple Intelligence의 도입을 강제로 늘려야 한다는 내부 압박
b. 주주들의 기대감 때문? (추측이지만 가능성 있음)
--> 하지만 제품이 별로라서 많이 안 사면 결국 Apple Intelligence 도입에도 도움이 안 된다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인 것입니다
c. 추가로, 애플이 직접 개발한 셀룰러 모뎀 (C1 칩)을 시험할 아이폰 모델이 필요했습니다.
--> 셀룰러 모뎀은 스마트폰의 핵심 부품으로, 퀄컴이 독점해온 시장이라 자체 개발 기술은 큰 리스크가 따릅니다.
--> 메인 아이폰 모델에 탑재하기 전, 실제 환경에서, 실제 사용자의 데이터를 수집해 오류나 불량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사실 시간이 지날수록 저가형 아이폰의 사양도 점점 올라갈 수밖에 없습니다.
- 2016년 아이폰 SE (1세대)는 아이폰 5s 디자인을 재활용한 저가형 모델이었습니다.
- 2022년 아이폰 SE (3세대)는 아이폰 8 디자인을 재활용한 저가형 모델이었죠.
- 그런데 이제 더 이상 "버릴만한" 구형 디자인이 없습니다.
- 애플이 "버리는" 기술이 줄어들수록, 저가형 모델의 원가 절감도 어려워집니다.
즉, 시간이 갈수록 애플은 저가형 아이폰을 더 만들기 어려운 구조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이폰 16e는 불가사의한 제품입니다.
- Apple Intelligence 도입을 늘리려고 만든 제품으로 추정되지만, 기능 대비 가격이 비싸서 많이 안 팔릴 가능성이 큽니다.
- 가격은 "저가형"이라 하기엔 비싸고, 사양은 "프리미엄"이라 하기엔 부족합니다. 어정쩡하죠.
- 애플이 AI 시대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나온 대표적인 혼란의 산물이라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솔직히 말해, 저도 100% 이해는 안 갑니다.
하지만 결국 애플이 오랜 기간 고민하고 내놓은 결과가 이 정도밖에 안 된다는 것 자체가, 애플의 위기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가 아닐까요?
제 논리가 그럴 듯한가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재밌게 읽으셨으면 좋아요 부탁드려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