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를 기다린다.
대게 그래왔 듯 일찍 도착해서 난 적당해보이는
찻집에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책을 가져왔지만 꺼내지 않았다.
6500원짜리 계피대추차는
돈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맛있다.
날은 청명하고 컨디션은 뭐 그럭저럭.
오늘 보자던 그 사람은 아직도 연락이 없고
그래서 슬슬 부아가 치밀어 오르고 있고
다행히 그걸 잊게 해줄 앞선 약속이 있으니
일단 두고 보고.
남편, 아니 애들 아빠와의 관계는
지금의 기형적인 동거처럼 최소한 둘째가 초등학교를 졸업할때까지는 감내해야 할 상황인데
문제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터졌다.
바로 첫째녀석.
아빠의구타와 폭언때문에 나를 의지해왔던 녀석이
이젠 지 애비와 똑같이 변해가고 있다.
수컷들은 그런가
부당한 폭력에 분개했다가 그 폭력의 화살이 다른쪽으로 향하게 되면 공범자가 되어 함께 상대를 공격하는.
심지어 그 상대가 한때 약자였을때의 자신을 감싸주었더라도...
불화의 발단은 의외로 아니 너무나 유치한 것이었다.
아니 그 나이대는 결정적인 이유일 수도.
돈이었다. 본인의 옷을 살 돈.
애초에 이혼 합의시 애들아빠는 큰애를, 나는 둘째의 양육비를 각자 부담하는 것으로 했다.
그러나 함께 살면서 어찌 그게 두부자르 듯 깔끔하게 구분이 될까. 큰 액수는 따로 부담하지만 간식거리, 소소한 용돈 정도는 아이를 가리지 않고 써왔다.
하지만 큰 녀석은 아직은 포식자 아빠보다는 내가 만만했겠지. 수시로 전화해서 만원 이만원 입금하라 난리를 쳤고 결국엔 열중 일곱은 그리 해줬다.
근데 녀석은 열중 셋, 내가 거부했던 기분나쁜 기억뿐이었던 듯.
기어이 추석을 맞아 옷값 삼십만원을 달라기에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남자셋이 고모집에 간다고 집을 나서는데 녀석은 연신 씨팔씨팔하며 집기를 집어 던진다.
그렇게 해맑게 웃으며 엄마바라기를 자처했던 녀석이
내가 증오하는 남편의 뒷모습을 닮아간다.
어미가 자식과의 연을 먼저 놓는 게 가능한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러려고 한다.
왜.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로 했기 때문에...
그게 설령 내 새끼라 할지라도.
뭐 이런 인생이 있나 싶기도 한데
깊게 생각 안하련다.
약속시간이 지났는데
이년은 왜 올 생각을 안하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