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New Sun

by 영자

기상했을 때, 어제까지의 우울하고 스산한 기운이 조금은 덜 느껴졌다.

다행이다.


알람을 해제하고 집에서 가져온 약을 입에 털어넣었다. 습관처럼 반숙란 하나를 꺼내 10초 데워 아몬드브리즈와 함께 '약 밀어넣기'를 한다.

약이 종종 식도 중간에 걸리는 일이 많아 반종일 이상을 쓴물이 올라오는 경험을 많이했던 터라

자연스럽게 체득한 나만의 방법이라 할까.


연휴전 빌려온 세 권의 책 중 두번째 권은 우려했던 것보다

꽤 빨리 읽혀진다. 선생님의 전작인 '강의', '담론'에서 진땀(?)을 뺀 전력이 있어, 이번에도 어느 정도는 각오를 단단히 했는데 대담집이라 그런지 오히려 쉽고 재미있기까지 하다. 중간중간 줄을 긋고 싶은 강렬한 욕구를 잠재우느라 오히려 그게 더 힘들었다면 과장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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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일전 사건(?)은 내게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이미 시작된 변화도 있다.

이를테면 기억 지우기, 아니 정확히는 나쁜 감정 지우기.

이 또한 긴 결혼 생활 중 암흑기 중에 터득한 나름의 지혜다.

그러나 과도한 delete는 건망증, 기억의 상실 같은 불가피한 부작용도 야기한다.

그래서 과거, 그것도 바로 어제 일조차 잘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으로 내 주변인들은 나를 잘 파악하고 있다.


결국 '그에 관한 기억' 중 애틋하고 아렸던 감각은 망각의 저편으로 사라져버리고 연대기적 사실 중 조각조각의 단편만이 남게 될 것이다.


스칼렛오하라의 마지막 대사가 참 유치하다 생각했다.

오갈데 없고 더 이상 기댈 곳 하나없는 절박한 상황인건 알겠는데 희망의 끄나풀을 잡으려고 거창하게 태양을 들먹이는 건 지나친 감상주의 아닌가... 하면서.


물론 내가 그녀의 상황처럼 극단적인 상황은 아니다.

이미 해도 높이 떴다.

그런데 뭔가 얇은 장막이 걷히는 느낌이 든다.

소위 ' 무언가에 사로 잡힌다'하지 않는가 'seized','fascinated'.. 그게 사람이든 물건이든.

내 뇌의 일부를 점거했던 무언가가 빠져나간 듯한 느낌.


그게 어제와 다른 태양이 떠오른 덕분일 수도 있고

간만에 통욕을 하고 나온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온전한 나로 돌아가는 중인 건 확실하다.


다시는 ... 백프로 자신은 없지만

미친 열병(혹은 염병)에 빠지지 않기로

다짐, 또 다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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