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를 보내며

by 영자

장장 열흘동안 뭘했냐고 누가 물으면

특별히 한 게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럼 거짓말 말라며 픽 웃을지도 모른다.

그 아까운 시간을 아무것도 안하는,

바보가 어디있냐고. ... 여기 있잖은가...


연휴의 대장정에 들뜬 사람들 사이로 나도

잠깐 들떠 있었지. 친구를 만나고 오랜만에 그도 만날 생각에..

친구를 기다리며, 우연히 찍은 어떤 사람. 그의 얼굴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두시간 반 여를 친구와 담소를 나눌 때까지만해도 즐거웠다.

서울에서 가장 좋아하는 동네를 오랜만에 놀러온 사실도 그랬고 잠시 뒤면 그를 볼 수 있다는 설레임 때문에...

그러나 그와의 통화에서 진작에 새드엔딩을 직감했어야했다.

내가 있는 지점을 찾을 생각을 하지않고

그가 보이는 이정표를 찾아오라 했을 때부터.


내 욕심으로 평소 다시 가고 싶어했던, 영화 '오, 수정'의 촬영지였던 술집에 가자고 하지 말았어야했다, 그게 그와의 마지막 장소가 될 줄 알았다면.

비릿한 내음, 허름해서 차라리 흑백사진이 어울리는 공간.

어쩌면 내 촉이 귀신같아 이별하기 딱 좋은 공간으로 이끌었는지도...

종각에서 집으로 오는 길에

무슨 이십대 청춘들이하는 그런 연애를 하다 쫑을 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러다 결국 볼 밖으로 흘러버리는 통에 고개를 푹 숙이고 한참을 기다렸다 다시 고개를 들었다.


내 연휴의 톤(tone)은 이미 정해졌다.

침묵, 사색, 정리, 망각..

색으로 치면 회벽색이요, 음으로 치면 느린 단조음계..


작정을 하고, 도서관에서 책을 세 권이나 빌려왔다.

맘 같아선 잠수라도 타고 싶었지만 그럴수도 없는 현실.

아이가 잠깐이라도 내게 짬을 줄 때면

난 차를 끌고 산 옆으로 가서 무작정 잠을 자거나 멍을 때렸다. 그러다 책을 읽기도 했다.


평소엔 항상 모자라더니

연휴 내내 차고 넘쳐 아까운 줄 모르고 펑펑 써 댄 것이 바로 '시간'이다.

이래도 될까 싶을정도로.

이제 하루 남았다.


연휴를 어떻게 보냈냐고 물으면


"한 남자를 보냈고

두 번 술을 마셨고

신영복 선생님을 다시 만났다 - 물론 책을 통해

그리고

내 비루하고 남루한 정신세계를 다시금 확인했다."


이 정도면 충분한 대답이 되는가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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