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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자 Jul 22. 2019

너덜너덜

일할 맛이 안 납니다.

처음보다 지금이, 지금보다 앞으로 마음의 갈피는 더 잡히지 않을 듯합니다. 


난데없는 낙하산 인사의 최대 피해자가 됐습니다.

처음엔 조직에서 하는 일이 다 그렇지, 길게 보고 잘 버텨내자, 새로 온 분 모시고 잘 꾸려 가보자,  

그랬는데 

막상 나의 보직장 타이틀이 없어지고 기존의 내 파트원들이었던 젊은 친구들과 동급의 직책이 되고 나니 

서운한 점이 자꾸 늘어만 갑니다. 


지난 금요일에는 가슴에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한 친구가 보고서 검토를 해 달라길래 이것저것 수정하라고 했더니만, 조목조목 받아들이기 싫다는 투로 대꾸를 합니다.

속으로 

' 그럼 왜 나한테 보고서를 검토해 달라고 하는지... ' 

' 내가 하던 업무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치고 관련 전문가들 소개해주고 버젓이 00 담당자로 만들어놨더니... '


나를 따르던 사람이 한순간에 변하는 것을 보고 온 몸에 힘이 빠져나가버렸습니다.  


나는 회사에서 사교적이거나 정치를 잘하는 인물 축에 끼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점심은 저 혼자 해결합니다.

없는 시간을 쪼개 점심에 한두 번 운동을 하나 보니 어쩌다 운동을 하지 않는 날이라도 

그냥 혼자 먹는 게 편하기도 해서, 같은 부서 사람들에게 저는 점심시간만 되면 사라지는 사람으로 각인이 되어 있습니다. 

딱히 업무시간 중에도 동료들과 따로 수다를 떤다던가 

의도적으로 고과권자들에게 친밀히 다가가 친교를 쌓는 일도 없습니다.

그냥 일만 해요. 

물론 회식이 있으면 술기운을 빌려 망가지기도 합니다. 

그나마 제가 낙하산 부장이 오기 전까진 조직장으로 소임을 다하고자  

후배 사원들과 소통하려는 노력도 많이 했습니다. 

이제 그런 감투마저 없어진 상황에 후배 사원의 돌변한 모습까지 보고 나니

가뜩이나 위축된 마음은 비수까지 꽂혀 너덜너덜한 거적데기가 되어버렸습니다. 


너 두고 봐라, 언젠가 다시 그 자리로 돌아가면 너부터 쳐낼 것이다, 

라고 마음먹는 것도... 부질없습니다.  

마음을 많... 이 내려놓아야 할 것 같습니다.

어디까지 내려놓아야 할까요.

이미 바닥인데, 그런 것 같은데 더 내려갈 바닥이 있을지. 


저녁에는 두 번째 서예 수업을 받으러 갑니다.

부디 거기에서 평정심을 찾고 지금의 이 허탈함, 번민으로부터 조금은 자유로워졌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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