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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자 Sep 11. 2019

근황


   은퇴 후 생계를 고민하던 중 갑자기 '명상'이 떠올랐다.


   수입이 생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나 자신에게 도움이 되면서 남에겐 좋은 일도 되는 일.
   '명상지도자'를 검색해보니 과연 '한국명상지도자협회'가 존재한다.
 
   이 협회는 불교 조계종에서 운영하는 민간 자격증 과정을 운영한다.
   오랜 방황에 드디어 길이 보이는 것 같아서, 또 서둘러 신청버튼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2급, 1급, 전문가 과정으로 구분되고 우선은 스님이 운영하는 스터디(?)에 가입하여 100시간을 수련하고
   협회에서 운영하는 대강좌좌를 35시간 이수해야 시험에 응할 자격이 주어진다.
 
   마침 회원을 모집하는 곳이 있길래 밤 11시라는 사실에도 아랑곳않고 무애스님이라는 분께 문자부터 넣었다.
 
   ' 스님. 저는 종교가 불교도 아니고 명상 경력(?)도 없는 데 지원이 가능할까요? 연이 닿았으면 좋겠습니다. '
   문자를 보내고 5분만이었을까? 무애스님이란 분께 더럭 전화가 온 것이다.
 
   " 아.. 종교가? "
   " 네, 천주교인데.. 잘 나가진 않습니다. "
   " 괜찮아요, 기독교인들도 종종 들어와요. 신청할 수 있고 다음주 일요일 탄허박물관으로 오심 됩니다. "
 
   목소리나 억양, 발음이 세월을 많이 잡수신 할아버지 같이 어눌해서 다소 믿음이 가지는 않았다.
   혹시나 사기꾼은 아닌가 싶어 인터넷에 '무애스님'을 쳐봤다.
   다행히 무애스님과 명상, 조계종 관련한 컨텐츠들이 몇개 보인다.
   그럼 됐다.
 
   첫 수업은 역시 상호 처음이라 모든 게 어색하고 힘들었다.
   특유의 억양과 조리없는 말솜씨 덕분에 졸음까지 겹쳐 환장하는 줄 알았다.
   그저 자발적으로 명상을 배우는 목적이었다면, 그날 이후 다시 찾아뵙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치 학점을 이수해야하는 학생의 입장과 같아서 나에겐 무조건 GO 밖에는 선택권이 없었다.
 
   두 번째 수업은... 좀 이상했다.
   스님의 말씀과 조리와 모든 것은 그대로였는데 이상하게 하신 말씀 중에 '자성부처'란 말이 자꾸 가슴에 와서
   들러붙는다.
   자성부처.. 자성부처... 다름아닌 부처로서의 나
   그분만 믿으라, 그분께 다 맡기고 내려놓으라.


   그 날 이후로 아직까지 술을 마시거나 폭식을 하지 않고 있다.
   그걸 안하려고 발버둥치고 있는 건 아니다. 그냥 내버려 두고 있다.
   자성부처께서 어떻게 하시는지.
   또 다시 술을 찾아도 최소한 마음이 힘든 일은 없어질 것 같다.
 
   며칠이 지나서야 수업 말미에 나눠주신 프린트물을 읽어보았다.
   역시 마음에 든다. 마음에 든다는 표현이 좀 그렇지만 내가 원하던 가르침이다.
 
   그러면서 갑자기 지원이를 업고 다니던 때가 떠올랐다.
   집에서 보고 있던 아기를 등에 업고 근처 성당을 거의 뛰다시피 찾아가 본당 신부님을 만났다.
   그러고는 대뜸,
   " 신부님, 저는 왜 신앙심이 생기지 않을까요? "
 
   신부님이 하신 말씀은 기억이 나지 않고 주셨던 책은 아직도 버리지 않고 있다.
   결국 그 질문에 대한 해답은 찾지 못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니, 나란 사람은 유일신에 대한 절대적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대신 옳은 가르침을 주시는 분을 따르고 그 분의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의지는 있는 종류의 인간같다.
   그 겸허함, 인간 스스로에 대한 믿음, 깊은 고찰,
   '원인'이라는 것은, 유구한 시간의 흐름 속에서 언제고 반드시 합당한 '결과'을 낳는다는,
   무섭지만 자명한 원리, 
   그래서 모든 부조리해보이는 현상들이 이해가 되게 하는 힘. 그래서 더 겸허해지는 나 자신. 
   
   아이들과 남편을 원망했었다.
   우스개소리로 '나는 전생에 아마 나라를 팔아먹었나보다 아니면 저들을 억울하게 살육했는지도 몰라.
   그 죄값을 현생에서 받나보다 ' 했다.
   여러번 되풀이하다보니 농담이 진담처럼 느껴졌다.
 
   불교를 접하기 전에 카르마란 단어를 접하고 그 단어부터 믿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이해가 됐다.
   내가 힘든 이유,
   힘들어도 억울할 게 없는 이유.
   오히려 힘듦을 감사하게 생각해야하는 이유.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바닥에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친 고통이 오히려 바닥에 발을 딛고 있으니 사라져 버린 느낌이랄까...
  
   얼마전에는 남편과 재결합을 했다.
   이혼은 마치 피 튀기는 살육전을 연상케 할 정도로 험난했던 데 반해
   금번의(?) 재결합은 너무나 뜬금없으면서 일상적인,
   마치 '밥 먹을래?', '그래'와 같은 대화처럼 이뤄지게 됐다.
 
   남편, 우리 그냥 합칠까?
   나, 뭐 그러던가...
 
   세상에 이런 사람들도 있던가.
   남편은 무슨 생각이었고 그런 나는 또 어쩜 그걸 대수롭지 않게 수긍하냔 말이다.
   새삼 사랑이 싹텄냐고? 아님 간혹가다 육체적인 관계를 가졌냐고?
   전혀 해당사항이 없다.
   그럼 왜 재혼을 하냔 말이다.
   이혼할 때의 문제가 해결된 것도 아니고 더더군다나 다시 사랑하게 된 것도 아니면서...
   나도 알다가도 모를일이다.
 
   굳이 분석을 해보자면, 일단 의지할 사람없이 은퇴를 맞이하고 생계를 책임져야한다는 압박감이 생각보다 컸다.
   이혼할 때는 그런 부분을 생각못했는가?
   솔직히 당시에는 좋아하는 사람도 있었고 설사 그 사람이 아니더라도 생계문제보다는 남편과 헤어져야 한다는
   자존감이 더 컸다.
   그가 다시 합칠까.. 라고 물었을 때 어떤 느낌이었냐면,
 
   아, 이제 좀 덜 불안해질까, 좀 든든해질까.
   그가 왜 그런 이야기를 꺼냈는지는 알 것 같다.
   아이들 문제, 본인 외로움, 나에 대한 미련?
   그러나 여전히 난, 평생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지지 않을 자신은 없다.
   이런 걱정부터 하는 날 누군가는 어이없어 하겠다.
  
   마무리가 너무 훈훈했나.
   그러나 다음 이야기를 듣는 독자 중 상당수는 위의 훈훈한 결말이
   한마디로 병신같은 결정이라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너무 한 번에 토해내려고 했는지 머리가 아프다.
   오늘은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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