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는
그냥 생각만 해도
그 생각에 따라 마음이 따랐고
그 마음이 행동으로 이어지는 건 자연스럽고 경쾌했다.
선생님에게 이쁨을 받는 아이를 보면 샘이 나서
그 아이처럼 공부를 해서 성적을 올렸다.
그랬더니 당시 50여 명이나 우글대는 무리 중에서 나도 선생에게 이름이 불려지는 소수의 아이가 되었고,
매 학년 반장선거 후보 대열에 끼고 결국 반장, 부반장을 줄곧 맡게 되는 소위 '모범생'이 되었다.
비단 공부뿐 만이 아니었다.
그림, 서예, 달리기... 거의 모든 부문에서 나는 마음을 먹고
실력을 다져서 줄곧 우수상을 받아와 부모님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어렵지 않았다.
초등학교 때 반짝하고 떨어지는 수많은 별들 중 하나는 아니었나 보다.
중학교, 고등학교 시절 내내 필요한 노력의 강도는 커졌지만
그만큼 마음을 내어 노력을 하였고 결국엔 원하는 결과를 손에 쥐곤 했다.
어릴 땐, 나의 뿌리, 본질, 진짜 나 자신이라고 하는 것이 온통 나를 지배하고 있고
그 외 혼탁한 그 어떤 것도 나를 훼방하지 않았다.
나는 나를 믿어야 한다는 특별한 의식적 노력 없이,
행하는 나와 믿음의 결실을 만드는 나 자신을 둘로 보지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나는 마음먹는 데로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만들어 내었다.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그러나 지금은 '기적'이라고 불러야 할 만큼 어려운 일이 되어버린 잊힌 능력.
14살의 김지영은 겁이 없었다. 두려움이 없었다.
44살의 김지영은 겁부터 낸다. 의심부터 한다.
내가?
할 수 있을까?
내가 나를 믿지 못하니 설사 무언가를 하더라도 그게 온전히 결실을 맺겠는가
잘 안되면, '그럼 그렇지'
잘 되더라도 '운이 좋았나?'
나이를 먹으면서 쓸데없이 자아상만 많아지고
'나의 본질은 무엇인가' 바보 같은 질문을 허공에 대고 떠들어왔다.
길고 긴 터널을 지나 비로소 나는 '내 자리'로 돌아간다.
첫 술에 배부르 길 바라진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