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엄마집에서 거의 이십여년만에 고모, 또 내가 매우 아끼고 귀여워했던 사촌동생들 그리고 첫째녀석의 부인까지 한꺼번에 만나는 일이 있었다.
사촌이 여럿있지만 그 중 큰 아이... 이젠 아이라고 부르기 어색할 정도로 장성해서 벌써 한아이의 아버지가 됐지만... 어쨌든 이 아이는 내가 너무도 예뻐했었다.
예쁘기도 했거니와 무엇보다 심성도 곱고 착한 녀석이 다른 누구보다 나를 무척이나 잘 따랐다.
나는 어렸을 때 매우 짖궂어서 동네 아이들은 물론 심지어 친동생들한테까지 장난도 심하고 함부로 대하기 일쑤였다. 그 전횡은 이루다 말을 할 수가 없다.
이 사촌은 그나마 고모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함부로 해서는 안된다는 부담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는 나 스스로 이 아이가 참 좋았다.
녀석이 그걸 기억하는지 강산이 두번 바뀌었는데도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왠지 친누나 바라보듯 정겹고 또 정겹다.
고모와 그 남편사이에 수많은 불화를 보고 자란 아이들이라 그 애틋함이 더 컸던 것 같다.
또 이 아이들도 그런 이유로 우리 가정에 더 많이 의지하려고 했던 것 같기도 하다.
불행히도 삼남매 중 둘째는 어렸을 때부터 정신병을 앓았는데 최근엔 그나마 많이 양호해졌다고 하니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아이들의 엄마인 고모 역시 내게는 특별한 존재였다.
나에게 '책'이란 걸 처음 선물해주고 '한글'도 처음 접하게 해준 고마운 분이다.
내가 첫조카였기 때문에 그 애정이 남달랐으리라...
아직도 기억하는 '삼성당' 문고.
뒷면이 빨강에 가까운 주황색이었던 것도 내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나는 고모덕분에 여느 아이들보다 뒤쳐지지 않게 한글을 떼고 책과 친숙하게 될 수 있었다.
그런 고모도 한때는 고모부와 좋은 시절을 보냈던 기억이 내게도 있다.
고모가 갓 큰 아이를 출산하고 불은 젖을 만지면서 아파하던 모습, 처조카인 우리들한테도 다정하게 대해주던 고모부...
그러나 그 기억이 거의 마지막이었다. 고모가 행복하게 보였던(?) 시절...
몇년씩 띄엄띄엄 고모를 볼때마다 두 내외의 사이가 얼음 갈라지듯 벌어져있었고 경제적인 사정도 매번 급추락해 있었다.
어제 본 모습은 갖은 풍파와 시련을 뒤로하고 이제야 미풍에 얼굴을 내맡기는 듯 했다.
고모는 아빠와 같은 병을 앓고, 그 딸은 나와 같은 병을 앓고 있어서 다시한번 핏줄의 무서움을 느끼기도 했다.
지랄맞은 우리 애들과 나는 일찍 퇴각했다. 그들의 평화와 건강을 진심으로 기원하면서...
세상에 사람의 모습이 다 다르듯이 사람사이도 그 무한승수만큼이나 다양할 수 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저히 내 기준으로 본다면, 하 세월이 흘러서 만나도 정겹고 반가운 이들같은 사람이 있는 반면 어제 봤는데도 또 오늘 보면 다시 대면대면한 사람들 크게 두 부류 나눌 수 있더라...
후자야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만, 전자의 경우처럼,
가끔 이렇게 현실화하여 서로 건강히 살아있음을 서로 그리워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것만큼 가치있는 일도 없겠다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