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아픈 단어 혹은 그런 상황

by 영자

6위. 술, 우울증

의학의 힘을 빌린덕에 많이 양호해졌지만

그전까진 내 육체와 영혼을 갉아먹던 놈들

Never go back then again!


5위. 남편, 너무 성급했던 결혼

아이들에겐 미안하지만 세상 어느 것보다

가장 후회되는 선택, 그와의 결혼.

행복했던 시간은 1년? 나머지 16년여는

대립과 조율과 낙담과 포기, 무기력으로 점철

된 시간들


4위. 시어머니

25살부터 현재까지, 살아서도 죽어서도 나를

괴롭히던 사람.

내 결혼의 실패가 남편과의 불화가 표면상의

이유라면 그 본질엔 무섭도록 티안나게 자리

잡고있는 집착의 화신, 시모가 있다.

죽는 장소마저도 내 집, 내 방을 택했던

이기적이고 잔인한 노인네.

나를 데려가려는지 아직도 구천을 떠돌며

내 의식, 무의식 속에 활발히 살아

숨쉬는 그녀.


3위. 워킹맘

대학졸업후 일을 쉬어본적 없는 나.

지금은 홀로서기 준비때문에라도 더욱더

가열차게 일에 헌신해야하나

나도 한때 짧았던 시간이었지만, 남편과

백년해로를 진심으로 꿈꾸었을때

그에게 생계를 의지하고 온전히 아이들을

키우고 싶었다.

금슬에 금이가고 결혼생활이 나락으로

떨어지면서

`내 밥줄은 내가 쥐고 있어야 한다`는 걸

다시금 일깨워준 그. 어쩜 세상 누구보다

고마운 상대 일지도.


2위. 학교, 아이들의 학교

내가 낳는 아이는 당연히 나를 닮아 영특하고

책을 좋아하고 숫기도 없고 뭐 대략 그럴 줄

알았다. 왜냐하면 난 그렇게 내 믿음대로

인생이 제법 잘 굴러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자신감을 일순간 자괴감으로

피벗시킨게 있으니, 그건 바로 내가 낳은

아이들이렸다.

학교란 나의 위상을 공고히 해준 무대,

자긍심의 원천이었는데, 내 아이들로 인해

학교는 얼굴 들이밀기 창피한, 그래서 가급적

멀리하고 싶은 대상이 되었다.

아이들의 담임으로부터 호출이 있을 때마다

30여년전 내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한껏 움츠러든 한 죄인이 학교에 들어선다.


공동 1위. ADHD, 틱

아이들의 이 증상들을 미워해야하는데

나는 자주 아이들을 미워한다.

아니 이해해주지 못한다.

알면서, 아이들도 어쩌지 못함을 알면서

난 보듬고 안아주지는 못할망정

화를 내고 서슴없이 욕을 한다.

망할 년.

가여운 것들인데 ...

잊어먹지 말자. 환자를 더 아프게 해서는 안된

다는 걸, 그건도 엄마란 작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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