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뉴스에 대구 간송미술관 개관에 전시실마다 늘어선 줄을 보여주었다.
'아 좋은가보네~' 하고 흘려봤는데 지인의 카톡 프사에 훈민정음 해례본을 보는 순간 갑자기 흥분 되었다.
"아! 나도 나도! 당장 보러 가야 해!"
휴일 아침.
"우리 아침 먹고 바로 간송미술관 갈꺼야.
지윤아~ 거기 엄마 그림 걸려 있대~^^
보러 가자~"
"엄마 그림이 왜 거기 있어?"
순진한 예쁜딸, ~^^
신윤복의 미인도를 보며 과연 "엄마 그림 맞네"라고 이야기할까?... 의문과 함께 출발~
일본으로 유출 되었던 신윤복의 미인도는 1930년대 전형필 선생이 오사카의 한 고미술상에게서 사들였다 한다.
미인도를 찬찬히 보고 있자니 요즘 같은 성형 미인이 아닌 자연스러운 편안한 美이다.
귀 뒤쪽 잔털까지 표현된 걸 보니 사진이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섬세한...
나는 뒷.분께 자리를 양보하라는 말이 나오기전까지 넋을 놓고 본 듯하다.
"난 다른거 아무것도 안봐도 오늘 너무 만족해.
신윤복의 미인도 보러 온 거였어.
이거 하나만 봐도 충분해^^♡"
내 마음을 감동 시키는것, 보고만 있어도 마음 잔잔한 아름다움이 퍼지는... 미인도는 그런 대단한 후광을 가진 그림이었다.
신윤복의 미인도를 본 사람들의 반응도 궁금해진다. 이 본질적인 미를 다른이들은 어떻게 표현할까...
8천원이 아닌 8만원이래도 꼭 가보고싶은 곳.
간송미술관은 그렇게 대구 시민들의 마음을 위로 해주고 보듬어주는 듯 하다.
나오는 길 차에타자마자 10월초 평일 오전으로 다시 예약을 했다.
성인1명.
혼자 조용히 다시 한번 오고 싶다.
그때 나는 간송미술관을 둘러싼 무게감을 오롯이 혼자 누리는 사치를 부릴 예정이다.
나는 또 신윤복의 미인도 앞에서 한참 동안 서 있겠지...
미술관에는 현재 간송 컬렉션을 대표하는 국보·보물 40건 97점, 간송 유품 26건 60점이 전시되고 있다.
이번 개관 전시에서는 6·25 전쟁 피난 때를 제외하고는 서울 밖을 나와본 적이 없는 훈민정음 해례본을 만나볼 수 있다.
한글의 창제 원리와 용례를 담고 있는 국보이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해례본은 1940년 전형필 선생이 경북 안동에서 취득한 후 해방 전까지 공개하지 않다가 1971년 10월 서울에 간송미술관이 개관하면서 처음으로 대중앞에 공개됐다.
전형필 선생이 당시 기와집 10채 가격에 산 후 6·25 피난길에서도 몸에 지니고 다녔을 정도로 애지중지하던 유물이었다고 한다.
서울 간송미술관 외부에서는 국립중앙박물관, 국립한글박물관에서 전시됐던 게 전부였다.
연휴기간 모든 시간 예매가 매진일만큼 줄이 너무 길어서 ‘여세동보(與世同寶)-세상 함께 보배 삼아’이 전시관은 아쉽게 보지 못했다.
우리나라 국보, 보물을 내 눈으로 볼 기회가 흔치 않으니 꼼꼼히 한번더 감상하여 머릿속 차곡차곡 재어두고 싶다.
언제든 마음이 헛헛 할 때마다 펼쳐 낼 수 있게 말이다.
10월의 어느날, 다시 가 보는것을 목표로...
그날을 기대하며, 보름여 남은 날들은 또 행복한 기대로 가득 채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