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시의 세레나데.. 이젠 뭠춰야...

누군가의 음악은 누군가에게는 소음이었다.

by 김민정

​우리 집의 작은 피아니스트, 지윤이♡


지윤이는 피아노를 단순히 악기로 대하지 않는다.

학교 가기 전 인사를 건네듯 한 번,

자기 방에 들어갈 때마다 안부를 묻듯 또 한 번.


엄마와 아빠를 침대에 앉혀두고

"잘 들어봐~ 딴데보면 안돼~" 하혼자 좋아서 웃음반 연주반을 하는 아이의 모습은 우리 가족의 가장 평화로운 풍경이기도 하다.


어느날엔 ​급기야 헤어밴드로 눈을 가리고 건반을 짚어내는 '신공'을 발휘해, 그걸 본 우리는 웃음을 넘은 대환호로 "어머 얘좀봐~ 진짜신기하다~ 예쁘다"를 연발하며 고슴도치 가족이 되었다.

그 열정 덕분인지 아이의 실력도 날로 늘어다.



​"으악, 잠 좀 자자!"

사랑이 섞인 비명


​주말 아침 10시쯤, 지윤이의 연주 소리에 옆방에서 24살 오빠의 비명이 터져 나온다.

"으악~ 지윤아! 잠 좀 자자!"


짜증이라기보다는 웃음 반, 사랑스러움 반이 섞인 앙탈.

그 목소리에 담긴 동생을 향한 애정을 알기에 우리는 또 한바탕 웃으며 아침을 맞이했다.


음악은 이렇게 사람을 행복으로 빠져들게 하는 신기한 매력이 있다고 믿으며 말이다.




지난 아침, 아이와 함께 나선 길에서 마주한 것은 뜻밖의 경고문 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눈에 띈 커다란 종이 한 장.


​'전날 저녁 8시 피아노 친 세대... 명백한 사생활 침해이니 당장 멈추거나 방음벽을 설치...


종이한장 ​구구절절 날카롭고 감정적인 문장들. 글씨마다 서린 분노가 서늘하게 다가왔다.

종이를 읽어 내려가던 지윤이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 나를 돌아보았다.


"엄마... 이거 나 같은데...?"


나도 ​심장이 덜컥...


밤 9시 이후는 안 된다는 공지를 봤기에, 전날 저녁 8시 정각에 피아노를 치던 아이를 보며 '조금 애매한데?' 하는중 5분도 채 안 걸리는 연주는 끝나버렸다.


하지만 마치 큰 죄인이라도 된 양 몰아세우는 그 글귀 앞에,

아이도 나도 한순간에 민폐주민이 된 기분이었다.


...

​결국 무거운 마음을 안고 관리사무소에 전화를 걸었다.

우리 집임을 밝히고 상황을 설명했다. 늦은 밤이 아니었다는 항변 아닌 항변을 덧붙이는 내게, 관리소장님은 나직한 목소리로 답하셨다.


​"층간소음이라는 게 참묘해요.
상대의 기분에 따라 천차만별이거든요.

내 기분이 좋을 때는 밤 10시 피아노 소리도 자장가처럼 들리지만, 마음이 안좋을 때는 낮의 연주 소리도 짜증나는 법이거든요.
결국 서로가 조금 더 넓은 마음으로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기분안좋으시겠지만 또 좀 이해해주세요"


​가슴 한구석이 무거워졌다.

내가 방심했던 8시의 5분이, 그 이웃에게는 유독 고단했던 하루 끝에..

마지막 인내심을 건드린 순간이었을지도 모를일이기에..




​우리 집엔 새로운 규칙이 생겼다.

저녁 7시가 넘으면 피아노 치지 않기. 낮에 칠때도 소리가 울리는 페달은 절대 밟지 않기.


혹여나 소리가 새 나갈까 봐 연주하는 아이 옆에서 내가 더 가슴을 졸인다.

예전처럼 설렘이 아닌, 이젠 불안함으로.


​음악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다고 믿었는데,

그 마력은 '나'의 즐거움이 '너'의 평화를 침범하지 않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배운다.


아파트라는 거대한 공동체 생활 안에서 우리가 맞춰야 할 조화, 하모니는 도레미파 건반 위에만 있는 게 아니었다.


​지윤아,

비록 지금은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건반을 누르지만,

너의 연주가 언젠가 이웃의 고단한 마음까지 어루만질 수 있는 진짜 음.악.이 되길 바랄께^^


그때까지 우리 조금 더 넓은 마음의 방음벽을 쌓아보자~^^ 괜찮아~^^


​어디서든 음악은 영혼을 치유하는 힘이 있다. 하지만 그 소리가 누군가의 평화를 깬다면, 그것은 조화(Harmony)를 잃은 것이다...
이전 21화어느 '꼰대' 엄마의 쓸쓸하고도 다정한 설날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