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함이 사라진 자리에서 비로소 보이는 것.
남편이 2박 3일간 집을 비우게 되었다.
23년을 함께 산 부부에게 '부재'란 잠시일지라도
낯설음으로 먼저 다가온다.
사실 며칠간, 산적한 일들 앞에서 우리 부부는 서로 팽팽해져 있었다.
마음은 조급한데 시간은 빠듯하고,
그 여유 없음은 고스란히 서로를 향한 예민함이 된 듯도 하다.
미처 다독이지 못한 감정들이 남아있는... 이틀간 남편 없는 거실의 적막에 우왕좌왕하는 나를 보며 생각한다.
어쩌면 이 적막감은... 미안함과 서운함이 뒤섞인, 23년 차 부부만이 공유하는 지독하고도 애틋한 애증일지도 모른다고.
새벽 네 시,
날씨가 제법 풀렸다는데 내 마음은 여전히 한겨울인 건지 집이 춥게 느껴진다.
곁에서 잠든 예쁜 공주는 덥다며 이불을 걷어차는데,
어느덧 쉰 고개를 넘긴 엄마는 한기가 돌아 가디건을 찾아 입고 거실로 나섰다.
식탁에 앉아 이번주에 다 읽으려했지만 절반밖에 진도를 나가지 못한 책을 펼쳐드니, 방문소리와 정우가 나온다.
“엄마, 아직 안 자요?”
아빠없는 집안공기에 서로 조금은 쓸쓸한 기분.
사실 아까 자정을 넘겨 귀가하는 소리를 들었지만 모르는척 했었다.
스물넷,
인생의 가장 뜨거운 한때를 지나는 청년에게 필요한 건
간섭이 아닌 '믿음의 거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 역시 부모님의 지극한 시선이 버거웠던 때가 있었잖아... '
일거수일투족을 살피는듯한 시선에서 벗어나고 싶던 적도 있었다.
사랑하기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스스로 삶의 주인이 되길 기다려주는 일.
그것이 지금 내가 아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깊은 사랑이라 생각해본다.
우리 정우~ 현명한 청년으로 반듯하게 자라길 바랄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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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모님의 진심보다는 구속을 먼저 기억하고,
고마움보다는 서운함을 먼저 꺼내놓는 지금 나 자신을 발견...ㅎㅎ;;;
으이구~ 참 못났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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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와 <왕과 사는 남자> 영화 이야기를 잠시 나누다가.. 먼저 잔다며 들어간다.
“잘 자, 우리 쩡우~”
방으로 들어가는 나의 첫번째 보물 아들^^!
서늘한 새벽공기에 영화속 단종을 연기한 배우의 초점 없는 눈빛을 떠올려본다.
텅 빈 듯하면서도 모든 고통을 삼킨 듯한 깊은 눈빛.
이렇듯 때로는 현란한 수만 마디의 말보다
침묵 속에 담긴 눈빛 하나가 더 위대한 서사를 완성하기도 한다.
나를 바라보던 부모님의 짠한 시선.
이제는 노쇠해진 그분들을 보며 아릿해지는 나의 눈빛.
처자식을 위해 늘 일만 생각하는 남편의 피곤한 눈빛.
내게서 태어나 '엄마'라 불러주는 소중한 아이들을 향한 나의 절절한 눈빛까지.
결국. 우리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정직한 위로는 ..
그 눈빛을 맞춰가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며칠간 우리는 같은 곳을 보려다 서로의 조급함에 부딪혔던 건 아닐지...
새벽녘까지 잠들지 못하는 오랜 습관을 끊어내기 위해서라도,
내일부터는 다시 운동을 나가야겠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과 쓸쓸함을 잠재우는 길은.. 결국 몸을 정직하게 움직이는 일뿐임을 깨닫는다.
두세 시간 후면 다시 월요일의 분주함이 시작된다.
또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아낼 나에게 미리 따뜻한 응원을 ...^^♡
나의 새로운 한 주.
온화한 눈빛과 지긋한 미소로 맞이할께^^
반가워~ 우리 또 잘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