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그늘밑으로...

아빠 엄마~ 시간을 되감는 마법

by 김민정


"아빠, 저희 왔어요!"


"어이구, 우리 예쁜 지윤이 왔구나!"


예고 없이 불쑥 친정집에 들어서자, 정적이었던 공기가 순식간에 온기로 가득찬다.

욕실 어디쯤을 손보시던 아빠는 놀라서 쳐다보시고, 엄마는 주방어딘가에서 김치전을 굽고 계신다고 하셨다.


"잘 왔다. 김치전부터 좀 먹어라."
환대라는 단어로는 부족한, 무조건적인 반가움이다.



그 익숙한 공기 속에 발을 들이는 순간, 20여 년 전 어느 지점으로 되돌아간듯 하다.


방금 밥을 먹고 왔다하곤, 과자 몇 개를 집어 들어 거실 소파에 일단 드러누웠다. 시선이 닿은 곳에는 낡은 <허영만의 식객> 시리즈가 여전히 꼿꼿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결혼 전, 한창 재미있게 읽어 모아두었던 책들이다. 20년의 세월을 견디며 누렇게 빛바래고 손때 묻어 너덜너덜해진 종이가 손에 닿는다. 낡은 책 한 권을 몇장 넘기다보니 스르륵 눈을 감겼다. 잠시였지만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단잠에 빠져들었다.



"집은 사람이 머무는 곳이 아니라, 마음이 쉬는 곳이다."


어느 철학자의 말처럼, 나는 엄마집 거실이 세상 그 어떤 공간보다 평온하게 느껴진다. 잠결에 설핏 들려오는 엄마와 아빠의 소소한 대화 소리... 그 소리가 마치 자장가처럼 멀어졌다 선명해지기를 반복한다.

"이쪽에 콘센트가 없어서 불편하네... 이것 좀 봐줘요."
엄마의 나직한 요청에 아빠가 뚝딱거리며 무언가를 고치는 소리.


코끝이 찡해지며 감정이 일렁였다.

아무것도 아닌 일상의 풍경인데, 나는 지금 시간을 돌려 다시 엄마 아빠의 거대한 그늘 밑으로 숨어든 기분이다. 밖에서는 누군가의 어머니로, 또 무언가로 단단하게 서 있어야 했지만, 이곳에서만큼은 마음 놓고 '무능력한 딸'이 되어도 괜찮았다.


'맞아ᆢ 결혼전에 이런 느낌이었어'

편안한마음에 이순간이 지나는게 너무 아쉬워서 마음이 몹시 무겁게 느껴진...


잠시 눈을 붙이고 일어난 나를 보며 엄마가 말씀하신다.
"피곤해 보이더니 잘 자네.

더 누워라 무조건 쉬어라. 니가 애보고 일하고 살림하고 큰욕본다~"


늘 내가 안쓰러운 엄마는 또 걱정가득한 얼굴이 되어버린다...


자식에게 부모의 집은 어떤것으로도 재단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님을. 그곳은 나의 시작점이자, 언제든 돌아가면 나를 원형 그대로 받아주는 심리적 요람같은 곳었다.

오늘따라 시간이 천천히 흘러주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엄마아빠가 지금모습 그대로이기를...50년간 보아온 부모님의 부재는 아직은 상상하기어렵고 받아들일수도 없을것 같다.


돌아오는 길, 곁에 있는 딸 지윤이에게 마음속 말을 건넸다.
"지윤아, 엄마는 오늘 잠시나마 정말 행복했어. 네가 나중에 어른이 되어 고단할 때, 엄마도 외할머니처럼 너를 아무 조건 없이 안아주는 넓은 품이 되어줄꺼야."


부모에게서 자식이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은 두 가지다. 하나는 뿌리요, 다른 하나는 날개다.

ㅡ괴테

든든한 뿌리를 확인했으니, 이제 다시 힘차게 날개를 펴고 일상으로 돌아갈 에너지를 얻는다.


오래오래 느끼고 싶은, 마음이 따뜻한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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