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 작가가 이렇게 시작될 줄이야

작가 신청? 그냥 해버렸습니다.

by 똑똑한호구

예전에 다녔던 회사의 어떤 상사분은 새해에 항상 "New Year's Resolution이 뭐예요?"라고 회의시간에 물으시곤 했다.


뭐라고 말해야 하나...? 그때 사람들은 "운동이요"라고 무난한 답변을 하기도 하고, 소위 노처녀 그룹의 대표였던 어떤 분은 "올해 안에 결혼과 출산을 한꺼번에 해치우는 거요~"라는 유쾌한 말로 사람들을 빵 터지게 만들기도 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름에 따라 사람들이 모이는 일도 줄어들고, 한 해를 돌아본다던가 아니면 새해를 맞이하면서 새해 계획을 세운다던가 하는 것은 개인적인 것이라며 회사에서는 더 이상 얘기하지 않는 것이 예의인 시대가 되었다.


나는 지난해 1월에 아주아주 오랜만에 2025년 새해를 맞이하며 나와의 약속을 했다. 2024년 말까지 고민하던 내 숙제 같은 거였는데, 그것은 바로 내 취미생활을 찾는 거였다.


30대 어느 순간까지 있었던 나의 취미생활들은 어느새 어디로 갔는지... 집 <->회사 <->집 <->회사를 오가는 것이 전부인, 취미생활 하나 없는 단조로운 삶을 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나 스스로에게 물었다. 너의 취미는 무엇이니?


나도 뭔가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고 싶다. 그런데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랐다. (사실 그건 내 평생의 숙제 같다)


주변 지인들을 통해 각종 취미 추천이 이어졌지만 대체로 나에겐 흥미롭지 않았다. 운동도, 미술도, 악기도, 봉사활동까지 30대까지 이것저것 웬만하다 싶은 것은 기웃거려 봤지만 재미를 느끼지 못했던 것은 내가 잘하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끈기가 부족해서일까?


그러다가 갑자기 불현듯 떠올랐다.

글을 써보면 어떨까?


내가 처음에 생각한 취미로써 글쓰기의 좋은 점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 짐이 쌓이지 않는다. (미술처럼 초기작품부터 뭐 하나 그릴 때마다 뭔가가 남는 게 부담스럽다)

- 아무 때나 할 수 있다. (악기는 들고 다녀야 하거나 혹은 악기 연주 자체가 주는 공간의 제약이 있어 아무 데서나 못한다.)

- 레슨 받아야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 나 혼자서도 그냥 하면 된다.


이런 어설픈 이유로, 그냥 갑자기 글이 쓰고 싶어졌다. 사실 나는 글쓰기가 내가 잘할 수 있는 영역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나는 글보단 말로 먹고 살아왔던 사람에 가깝다. 하지만 회사에서 끊임없이 말하고, 말하고 난 것을 정리해서 문서화하거나 이메일을 쓰는 일을 오랫동안 하다 보니 어쩌면 나에게도 글 쓰는 능력도 조금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 같은 것이 있었다.


2025년을 맞이하면서 새해의 계획을 1달에 2번 글을 써보는 것으로 정했다. 그래서 나는 마치 대학원에 입학원서 넣을 때처럼 브런치앱에 들어와 작가가 되고 싶다고 신청을 했다.


이미 출간 작가이거나, 블로그를 해왔던 분들은 본인의 책이나 그동안 써온 글들을 참고자료로 내고 작가신청을 하신다는데, 나는 그냥 퇴고 없이 마구마구 써 내려간 저장된 글 두 개를 과감하게 참고자료로 냈다.


그렇게 나는 2025년 1월부터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사실 안될 줄 알았다.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2025년 한 해 동안 1달에 2개의 글을 발행했다. 브런치에는 매일 글을 쓰시는 분들도 많고 연재를 통해 글을 쓰시는 분들도 많다. 그분들은 곧 종이책까지 내실 찐 작가님들이고... 나는 나대로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글을 쓴다.


한 달에 2번.


2025년 1달에 2번씩 그렇게 나만의 주기로 나의 소중한 취미생활로 2025년 내 새해계획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왜 한 달에 두 번이냐면? 나는 내가 겪은 일을 바탕으로 해야 겨우 글을 쓸 수 있다. 생각한 것만으로도 글을 쓰시는 분들의 영역까지 가는 데는 아무래도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여태 겪어왔던 일들을 되짚어보고 그를 바탕으로 글을 쓰려니 일주일에 한 번도 나에게는 어려운 일이다.


그리고 내가 몰랐던 부분인데,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글을 쓰는 것보다 더 많이 읽게 된다. 디지털 난독증이 심한 나이지만 틈이 날 땐 기사검색 대신에 다른 작가님들의 글을 읽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처음에 생각한 "취미로써 글쓰기의 좋은 점"은 시간이 지나면서 실은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 짐이 쌓이지 않는다. -> 한 달에 2번 글 쓴다고 맘먹고 나니 그게 바로 짐이다. 생각보다 한 달에 2번은 빠르게 돌아온다.

- 아무 때나 할 수 있다. -> 노트북 앞에 있어야 쓸 수 있다. 도저히 모바일로는 눈이 침침해서 쓸 수가 없다.

- 레슨 받아야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 그건 그렇긴 하다... 그런데 불특정 다수가 볼 수 있는 것은 결과적으로 레슨 안 받고 무대 위에 올라간 것 같다 ㅎㅎ

- 나 혼자서도 그냥 하면 된다.-> 이것도 맞는데... 그래서 가끔 용두사미가 되거나 엉터리 같이도 막 써댄다 ㅠ


p.s. 이 좋은 공간에서 감히 글쓰기가 취미라고 말하는 내가 수많은 작가님들에게 건방지게 보일 수 있을까 봐 덧붙이자면... 아주 감사하게도 브런치에서 "작가"라는 이름으로 글을 쓸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지만, 나는 내가 진짜 작가라고 할 만큼은 아닌 것 같다. 수많은 전업작가님들과 전업작가를 앞둔 수많은 브런치 작가님들을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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