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보는 셋째의 기본값인줄 알았습니다.
첫째에게는 자유를,
둘째에게는 관심을,
셋째에게는 새 옷을
이란 말이 있다. 이 얘기를 들었을 때는 어쩌면 이렇게 찰떡같이 잘 맞는 말을 만들어 낸 거지?라고 생각해 왔다. 오래된 내 친구가 셋째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그 친구에게 셋째 아이의 새 옷을 선물했는데 그 친구의 답장은,
"아이고 세 번째인데 옷을 선물하고 그래..."였다.
나의 대답은 역시 "셋째라서 선물한 거야~"였다.
그렇다. 나는 백화점 유명 메이커 옷이 아니더라도 친척 누가 주고 갔다는 물려 입은 옷보다는 시장통에서 사 온 싸구려 새 옷이 좋았던 셋째로 살았다.
부모는 안 아픈 손가락 없이 사랑과 정성으로 아이들을 키운다. 하지만 하루하루의 숨 가쁜 일상에서 모든 아이들에게 똑같은 관심과 똑같은 에너지를 같은 결로 쏟아내며 키우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첫째였던 언니는 모범생의 삶을 살았음에도 성인이 되고 나서도 부모님 기준에 맞지 않는 경우는 소위 투쟁의 역사를 거치며 살아갔다. 둘째였던 언니는 어릴 때부터 언니와 동생들보다 더 관심을 받기 위해 밖에서는 언제나 눈에 띄는 성적과 결과물을 받아왔다.
그렇다면 셋째였던 나는...?
나는 포기하는 법을 배웠다. 부족했던 살림에도 뭔가를 사달라고 부모님을 조르는 것은 동생의 몫이었고 이미 역할이 다 차버린 상태에서 내 역할은 아마도 이 가정에 짐이 되지 않고 조용히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초등학교 3학년때였던가? 친한 친구들이 피아노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던 때가 있다. 피아노 학원을 다녔던 언니가 있었고 집에 피아노도 있었으니 나도 당연히 다닐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학교가 끝나고 똑같은 노란색 피아노학원가방을 들고 학원을 가는 친구들을 바라보기만 해야 했다.
그러고 나서 2년 뒤, 동생이 학교에서 음악성적에 문제가 생기자 동생과 나는 갑작스럽게 동시에 피아노 학원을 다니게 되었다. 그렇게 다니고 싶었던 피아노학원이었지만 나는 기쁘기는커녕 학원을 가는 것이 괴롭기만 했던 기억이 난다. 동생에겐 새로운 바이엘책과 노란색 피아노 학원의 가방이, 나에겐 언니가 쓰던 낡은 옛날 바이엘책과 언니가 쓰던 다른 학원의 검은색 피아노학원이 주어졌고 그 모습을 계속 눈에 거슬리던 학원선생님의 싸늘한 눈빛도 기억에 선하다.
그렇게 꾸역꾸역 1년을 다녔다. 학원 선생님이 이제 그만 다니는 게 어떠냐고 할 때까지...
분명 바이엘을 다 떼고 체르니까지 쳤던 걸로 기억하는데, 그때 이후로 더 이상 피아노를 치지 않아서 지금은 젓가락 행진곡도 칠 줄 모른다.
이 글을 쓰기 전까지만 해도 내가 누군가에게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데 취약한 것이 어릴 때 포기하는 법을 학습해서 그런 것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면 어땠을까? 인정욕구가 강한 둘째였다면 동생 때문에 피아노학원을 가게 되었더라도 죽어라 피아노를 연습해서 칭찬받을 결과물을 만들어오지 않았을까? 본인이 원하는 것을 어떻게든 얻어내고야 마는 막둥이 막내였다면? 피아노학원을 보내줄 때까지 어떻게 해서든 부모님을 조르고 졸라 어떻게든 3학년 때 피아노학원을 다니지 않았을까?
나는 어릴 때부터 양보하고 포기하는 법을 배워왔다. 그런데 그 포기의 학습이 가끔은 나에게 좋은 결과로 오는 것은 아닐 때가 있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말하는 것이 어색하고 누군가에게 요구하는 것이 너무 어렵기만 하다.
내가 원하는 것이 다른 사람의 의사와 반할 때, 나는 쉽게 포기를 선택하곤 한다. 내가 포기하면 다른 사람과 충돌이 사라지고 부담이 사라지니까 그래왔던 것 같다.
그리고 그 포기의 방식이 때로는 적극성을 떨어뜨리거나 의지표명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다거나 하는 소극적인 행동으로 표출되곤 한다.
나는 남 신경 쓰지 않고 내가 원하는 것을 당당하게 말하고 내가 원하는 것을 해내고 마는 사람들이 부럽다. 어떻게 하면 나를 바꿀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지금 내가 쓴 글을 다시 읽다 보니 내 글에서 해답이 있다. 상황에 얽매여 내 역할을 정의해 버린다거나 혹은 내 의지를 꺾는 것을 나 스스로 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어린 시절부터 포기하던 습관을 이 나이가 돼서 반성하게 된다. 포기하는 것을 포기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