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삶에서 29살에 미국 주재원으로 발령받기까지
삶이 실패했다고 느꼈다.
불과 1년전 이야기다.
'나는 조급했고, 성숙하지 못했고, 행복하지 못했다'는 글을 적은게 바로 작년 이맘때이다.
회사생활을 7년 넘게 하며, 삶에는 분명 즐겁고 기쁘고, 감사하고 행복한 순간도 있었지만, 날이 갈수록 답답하거나 지루하고, 암담하거나 피폐해지는 시간들이 길어졌다. 때로는 장점이라고 믿었던 나의 모습들이 조직 안에서 고쳐야하는 치명적 단점처럼 보이기도 했고, 직무에 가졌던 자긍심. 회사와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는 믿음은 자꾸 희뿌여지기만 했다. 인간관계는 복잡하기만 했고, 열심히 할 수록 상처받는 날들이 많아졌다.
심지어 나이까지 삼십대에 가까워졌다. 친구들은 결혼하기 시작했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는 언니들이 부러웠다. 주변에서 결혼에 대한 질문과 압박이 심해질수록, 다시 혼자가 되어버린 내 삶에 회의가 들었다. 현재의 모습에 대한 만족도가 낮아지자, 지금의 현실을 만들게 된 과거의 온갖 사건이 후회처럼 다가왔다. '만약에 그때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이라는 정말 부가가치가 단 한 줌도 있지 않은 생각에 사로잡히기 시작했다.
너무 많이 울었고, 성격이 변해갔다.
예민하고 화가 많아졌으며, 얼굴에 늘 있던 웃음이 사라져갔다.
하지만 1년이 지난 지금, 나는 미국 실리콘 밸리에 주재원으로 나와있다.
한국에서의 삶이 너무 행복해서 미국에 나오기 직전까지,
정말 실리콘밸리로 나오는게 맞는지 고민할 정도로 삶이 회복됐다.
심지어 더이상 나에겐 미래가 없다고 회사에선
'00기업 최초, 20대 / 여성 / 미혼 미국 주재원' 같은 온갖 수식어가 붙는다.
대체 1년간 무슨 일이 일어난걸까?
1) 내 삶에 갖지 못한 것이 아닌, 갖고 있는 것의 소중함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2) 회사에서 아무리 상처 받더라도,
나를 있는 그대로 지지해주고 사랑해주는 소중한 사람들이 존재함을 깨달았다
3) 현재의 조직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4) 내 인생의 성장은 내가 만들갈 뿐임을 발견했다.
5) 언제나처럼 하던 노력을, '회사에서의 나'가 아니라 '인생에서의 나'로 초점을 바꾸었다.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보자면,
사랑하는 사람들과 여행을 다니기 시작했고,
제2의 삶을 위한 한국어 교육 학위 과정을 등록했다.
이직을 제의하는 헤드헌터들의 연락을 더이상 가볍게만 보지 않았고,
야간 MBA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을 함께하는 친구들과 응원해주는 사람들과 함께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우선순위가 정해졌고, 삶에 기쁨이 돌아왔다.
회사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우선순위가 되자, 멘탈이 강해졌다.
삶의 주도권을 되찾자, 나의 가치를 더이상 남에게서 찾지 않았다.
'현재 조직이 나를 대하는 방법'에 휘둘리지 않고,
'내가 실제로 회사에 제공할 수 있는 가치'를 스스로 정의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회사형 인간이고, 결혼하지 못한 29살에, 좌절하는 날이 너무나도 많은 삶이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를 온전히 누리고 있는 사회 구성원이자,
조금 더 성숙해진 상태로 반려자를 만나기 위한 기회를 갖게됐으며,
늘 좌절할정도로 시도해볼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축복받은 인생이기도 하다.
같은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삶이 어느정도까지 바뀌는지를 경험한 1년이다.
이 모든 변화는, 너무 좌절해서 SNS까지 끊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별거 아닌 순간들이 모여 만들어준 결과이다.
나는 그 순간들을 '이름 없는 순간들'이라고 부른다.
'이름 없는(무명, 無名) 순간에도 아름다움은 있다'는 내 사진 철학을 기반하는데,
막상 지나고 보니, 사진만이 아니라 인생도 그렇겠다 싶어서이다.
이 글을 적는 2024년의 10월도,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머나먼 타지인 미국에서 매일같이 외로움과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씨름하지만,
그 속에 또 아름다움이 있다고 믿는다.
오늘도 역시 아름다운 무명의 순간이다.
언제나 그렇듯 나는 또 글을 써나갈 예정이다.
내 목표는 이 무명의 순간들에, 이름을 붙이는 것이다.
25살에 7년간의 여행을 모아 '어디에 있든, 나는 여기에'라는 이름을 붙여 세상에 펴냈듯,
지금의 순간들을 모아 이름있는 책으로 엮어내고 싶다.
그래서 또 사람들에게 어떤 메세지를 전하고 싶다.
'어디에 있든, 당신이 있는 곳에서 당신은 이미 본인만의 서사를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그 자체가 이미 멋진 여행입니다. '라는 메세지를 담았던 게 첫번째 책이라면,
다음 책에서는 '무명의 순간들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싶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고민을 놓지 않았던 순간, 나만의 열심을 기했던 시간, 즐겁거나 힘들었던 날들이 만들어주는 본인의 삶 고유의 아름다움을 말이다.
정말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썼다.
다음 글은 언제일지, 또 어떤 글일지 벌써부터 기대된다.
글을 마치며, 이 글을 읽은 분들께, 삶의 아름다움을 돌아볼 기회가 되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