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에 배운 것들 #1 행복과 글쓰기의 상관관계
#1 행복과 글쓰기의 상관관계
행복할 때는 글이 잘 써지지 않는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순간의 소중함이 느껴질 때 굳이 노트북을 꺼내들어 자리에 앉아 시간을 보내기 쉽지 않은 까닭이 아닐까? 글은 나중에 써도 늦지 않지만, 찰나의 기쁨과 감사는 지금 누리지 않으면 사라지니 말이다. 반면에 지루하고 재미 없는 일상 속에서 글을 적기란 비교적 수월하다. 기본적으로 할 일이 별로 없는 경우가 많으며, 우울과 무기력을 헤쳐나가기에 글만큼 좋은 동반자도 없기 때문이다.
보통 적게 되는 글들은 생각의 파편들이다. 일정한 톤을 갖지도 않고, 주제 역시 신변잡기식이다. 어떤 때는 삶에 대한 고찰, 어느 날은 일상에 대한 감정, 가끔은 읽은 책에 대한 사색 등. 하나의 줄로 꿰기에는 지나치게 특색있는 글들이다. 심지어는 완결되지 않은 글들도 많아, 결국 아무도 모르는 메모장 속에서 긴 잠을 잔다. 그리고 우리는 이를 '글감'이라고 부른다.
몇 년 전, 꽤 오랫동안 모은 글감을 바탕으로 책을 낸 적이 있다. 240페이지 분량의 책이 되기까지, 고등학생 때 혼자 제주도에 여행가서 적었던 메모부터, 사회 초년생 시절 먼저 퇴사하는 선배에게 적은 구구절절한 편지까지 참 많은 글을 참고했다. 당연하게도 원문이 그대로 인용된 경우는 5%가 될까? 대부분은 영감을 주고 재창작의 전철을 밟았다. 초본이 완성되고도 퇴고를 거쳐 실제 책이 되기까지는 7개월이 더 넘게 걸렸다.
이처럼 글감이 다시금 독자를 만날 수 있는데까지는 생각보다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소요된다. 만약 컴퓨터 앞에 앉아 흰 화면과 검은 글씨를 보고 충분히 씨름할 당위성이 충분하지 않다면, 글을 쓰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스스로 왜 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한 의미부여가 필요하다. 다시 말하지만, 이러한 의미 부여는 행복할 때는 좀처럼 현실보다 앞서기 쉽지 않다.
오랜만에 펜을 들었다. 요즘의 내 인생은 4년 전 길고 긴 글을 쓸 때와 닮아있다. 쳇바퀴처럼 반복되는 회사와 집, 일상생활이다. 더 이상 기대되지 않는 내일과 설레지 않는 여행, 매일을 채우는 일상 속 고독과 외로움 사이에서 길을 헤매고 있다. 삶 전반에 만족하지만, 이유 없이 벌어지고 있는 시간의 틈이 커지고 있다. 공허함이 가져오는 우울함은 쌓이면 쌓일 수록 해결하기 어렵다. 애초에 이유 없이 나타난 암흑을 합리적으로 지우는 건 어불성설일지 모른다. 그래서 오늘의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
"글을 쓰자"
20대에 내가 캄캄하다고 느껴졌던 삶 속에서 빛을 찾아낸 방법이다. 이번 여정도 또 1년 반 쯤 걸릴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이번에는 글을 끝끝내 못끝낼지도 모른다. 첫 책을 내보겠다던 20대 다운 야심찬 목표도 더이상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떤 목표가 있지 않더라도, 지금은 자잘한 글들을 다시한번 백지에 채워보려고 한다. 왜냐면, 지금은 글을 쓰기 딱 좋은 계절이므로. 몇년간 쌓아온 글감을 다시금 하나로 꿰는 작업을 하기에 허락된 시간을 또 마음껏 누려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