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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걸음 Apr 07. 2021

#13 다시, 일상으로

새로운 일상

새로운 일상


기억이 흐려지고, 이 곳에 있었다는 

느낌조차 희미해질 때도 지금 여기에 있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테니까요. 


삶이 우연의 연속이고, 

작은 선택이 큰 변화를 가져오듯, 

이번 여행이 제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기를, 

아니라면 앞으로 조금이라도 

변화를 가져오기를 바라봅니다.


팀원들과 밀레니엄 브릿지를 바라보며 노을지는 풍경을 한참 바라봤습니다. 치킨 너겟과 맥주, 콜라를 사 들고 아예 자리를 잡아 하늘이 어두워지고 가로등 빛이 밝게 빛날 때까지 자리를 지켰습니다. 다채로운 경험으로 웃고 아쉬울 일 많았던 런던은 마지막까지 그림 같은 경관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보름 간 꿈처럼 지나간 아름다운 풍경과 평생 남을 기억들이 빠르게 추억으로 변해가는 중이었습니다. 서둘러 수첩을 꺼내 순간의 정취를 적었습니다.


사진으로 남기지 못한 그 수많은 풍경은 
정말 곧 기억 속에서 사라질까요? 

또, 그 장면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만으로 슬퍼지는 순간이 올까요. 

이 날들이 과거가 될지라도 
여전히 소중하기를 기도합니다. 

기억이 흐려지고, 이 곳에 있었다는 
느낌조차 희미해질 때도 지금 여기에 있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을테니까요. 

그 속에서 한 층 성장했다는, 조금이라도
바뀌었다는 사실도 잊지 않기를요. 

삶이 우연의 연속이고, 
작은 선택이 큰 변화를 가져오듯, 
이번 여행이 제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기를, 
아니라면 앞으로 조금이라도 
변화를 가져오기를 바라봅니다.


다음 날 영국을 뒤로하고 귀국길에 올랐습니다. 런던은 마지막 까지 청명한 날씨를 선사해주며 배웅해주었고, 비행기는 곧 창공을 가로지르며 태양 속으로 질주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에서 바라보는 영국의 마지막 모습은 지상에서 바라보는 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솜사탕 같던 구름은 내셔널 갤러리 유화에서 본 질감 마냥 생생하게 눈 앞에 펼쳐졌고, 쟁기로 갈아 놓은 밭 마냥 정갈하게 깔려 있는 구름은 교외에서 돌아오던 기차에서 본 하늘과 겹쳐 보였습니다. 맑은 날씨 덕에 이륙한 후에도 한참 동안 육지가 보였고, 보다 더 천천히 영국과 작별을 고할 수 있었습니다. 훗날에 떠올려도 결코 잊지 못할 장면 속에서 탐방을 마쳤습니다.



귀국 후에는 여전히 바쁘고 정신 없는 일상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인천에 도착한 날 새벽에 바로 동아리 방을 향해야 했을 정도였습니다. 동아리원들과 함께 준비한 토론대회가 이미 이틀 앞으로 다가온 시점에 마지막 조율을 위해 학교로 향했습니다. 새벽 2시, 이미 버스가 끊긴 탓에 자전거를 타고 페달을 힘차게 밟았습니다. 간혹 길가에 쓰러져 있는 행인들은 지금이 야심한 시각임을 알려주는 듯 했고, 불과 며칠 전 런던의 풍경과 달리 한국어로 가득 찬  간판들은 이곳이 서울임을 상기시켜주었습니다. 


수십 번을 달려보았고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길이었지만, 왠지 타지에 온 듯 작은 것 하나하나에도 눈길이 머물렀습니다. 보름 간의 짧은 시간 속 낯선 풍경과 경험이 감흥 없었던 익숙함을 새롭게 느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동네가 가진 따스한 정취가 한가득 느껴졌습니다. 한참을 달려 학교에 도착하자 정겨운 얼굴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종강 하고 한 번 보기도 힘들었던 동아리원들을 보니, 한국에 돌아왔다는 게 실감났습니다. 학기 중 같이 밥 먹었던 게 어제인양 생생한데, 그 사이에 유럽탐방을 다녀오고 다시 이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다시 일상입니다.

탐방을 다녀온 후로 해외생활을 향한 열망이 더 커졌습니다. 교환학생이 아니더라도, 외국에서 일을 해보고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해보고 싶은 소망이 생겼습니다. 수 만가지로 보이던 진로 중 해외 취업이 선명하게 빛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루하루를 보내는 일에 사라지지 않는 열정이 생겼고, 최선을 다해 보냈습니다. 국외에서 일하는 것에 회의적이던 아버지께서도, 이내 곧 진지한 고민에 진심 어린 응원을 보내주셨습니다. 다만, 큰 건물이 되기 위해 노력하다 지쳐 흉물이 되지 않도록, 현재 위치에서 하나씩 천천히 쌓아 올라가기 바란다고 하셨습니다. 오늘의 일부터 최선을 다하고, 단계별로 꿈을 이루어 가기를. 그 속에서 가족,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하는 축복을 누리기를 기도한다고 응원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면서 보내던 가을 어느 날, 선선한 바람이 몸을 훑고 지나가주던 시월의 밤. 등에 맨 가방이 너무 무거워 잠시 뒤로 제치자 머리 위 하늘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날도 새벽까지 공부하다 집으로 향한 길이었습니다. 쉴 새없이 몰아치는 일정에 녹초가 된 몸이었는데요. 하늘을 보자 웃음이 새어 나왔습니다. 짙푸른 하늘에는 별 하나 보이지 않았는데도 반가웠습니다. 


다시 올 것 같지 않은 기회가 주어지고
작았던 세상이 팔을 벌려 맞아주는 듯 했습니다.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 같고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에 행복했습니다. 어쩌면 지금이 제 인생에 황금기가 아닐까요? 이런 날이 다시 올 수 있을까요. 현재를 살고 있으면서도 매일매일이 감사했습니다. 누군가 말해주지 않아도 이 청춘이 빛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거운 가방을 매고 선선한 바람을 맞던 귀갓길. 진심이 육성으로 흘러 나왔습니다.


‘아… 행복하다’



물론 매일 행복하지는 못했습니다. 명확하지 않은 미래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시시각각 찾아왔고, 노력할 수록 오히려 자책할 일도 많아졌습니다. ‘열심’이라는 가치가 모든 걸 보증하지 않는 다는 사실은 가끔 좌절의 구렁텅이로 이끌기도 했습니다. 


가끔은 스스로 긴장을 놓쳐버릴 까봐, 괜히 더 가혹한 채찍을 꺼내 들기도 했습니다. 지금 제가 있는 곳에 충실할 때에 이토록 감사한 삶이 지속될 수 있고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그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스스로를 다잡고는 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이 다시 오지 않을 수 있는 날처럼 느껴진다는 것, 그 사실 자체만으로 많은 게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 브런치 독자분들을 위한 글

- 1년도 넘게 적은 글들을 매주 한차례씩 전달드립니다.

 - 한 주를 또 치열하게 살아냈을 매주 토요일 밤, 지나온 발자취와 함께 찾아뵙겠습니다 :)

 - 여러분의 삶에 자그마한 위로가 되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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