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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ngDu Jun 08. 2023

너희는 왜 내 곁에 있는 거야?

나의 어린 시절 ‘나’를 만나

온몸이 화끈 거린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이 가빠졌다. 스마트 워치의 심장박동은 110~120을 가리킨다. 심호흡을 크게 해 본다.




마을의 한 공터. 가을 추수가 끝난 논바닥의 한구석. 옆으로는 콘크리트 벽이 세워져 있고, 논에 물을 대기 위해 만들어 놓은 수로가 있다. 논바닥에서 도로 높이까지는 약 2m 남짓.  그곳에 내가 있다. 버튼을 누르면 온갖 소리가 나는 어린이용 자전거. 아직 두 발로 타기가 어려워 뒷바퀴 양쪽에 보조 바퀴를 달고 있었다. 내가 자전거에 앉아 있었다. 왜 그곳에 내가 자전거를 가지고 내려갔는지, 그곳에 있는지 정확한 이유는 모른다.

자전거를 탄 내 주위로 동네 형들인지 누구인지 모를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다. 모두 내 자전거를 구경하는 듯하다. 버튼을 눌러 소리 나는 것을 들어 보고 자기들끼리 히히덕 거린다. 그 기억의 마지막 장면은 그 사람들의 장난으로 내 자전거의 일부가 부서져 있는 것이다. 한 명이 자전거에 발차기를 했던 걸까. 그런 행동을 한 사람은 분명 장난이라고 생각했겠지.

무슨 이유 때문인지 어렸을 때 모습을 생각하면 이 날의 기억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어렸을 때 기억의 대부분은 혼자였다. 농사를 짓는 부모님은 항상 바빴다. 하교 후 집에 오면 혼자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자전거를 타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놀거나 공터나 큰 나무 밑에서 흙놀이를 하곤 했다. 동네에는 친구도 없었다. 친구를 만나려면 자전거를 타고 다른 동네로 가야 했는데, 위험하단 이유로 그것도 쉽지 않았다.

다니던 초등학교가 중간에 폐교가 되며 집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곳으로 전학을 가게 됐다. 보모님은 등하교를 직접 시켜 주셨다. 등하교는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도 이어졌다. 학교가 끝나면 데리러 와달라고 전화를 했고, 잠시기다리고 있으면 부모님이 데리러 왔다.

누나와 형은 고등학교를 기숙사 있는 학교로 갔다.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모두 다 흩어졌다.

여기서 스스로 의문이 드는 점은 왜 어렸을 때 기억에 누나와 형이 없는 것일까라는 것.


[나는 어렸을 때 굉장히 사랑을 많이 받았고 지금까지 외롭지 않게 컸다.]

누군가 나에 대해 물어보면 이렇게 대답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대답하지 못하겠다. 난 사랑을 많이 받으며 외롭지 않게 크고 싶었을 뿐이다. 저건 나의 바람이었지 실제가 아니었다. 지금까지는 인정하지 못할 뿐이었다. 이제는 인정해야 한다.

외로움은 언제나 나의 곁에 있었다.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나를 극복하고 싶다면 인정하기 싫은 나의 모습부터 들여다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난 나를 들여다보고 인정하기로 했다.


이제 나는 또 다른 나와의 싸움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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