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필 낙서와 어른의 얼굴

작은 흔적이 비추는 사회의 민낯

by MingDu

아파트 놀이터. 아이들이 분필로 바닥에 그림을 그린다. 짧은 손과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남긴 그 흔적은 해가 뜨면 더 선명해지고, 비가 오면 조용히 사라질 것이다. 하지만 그 다음 날, 아파트 단톡방에는 사진 한 장과 함께 글이 올라온다.

"어제 산책하면서 낙서하는 거 봤는데, 오늘도 그대로네요. 공공공간에서의 흔적은 정리하고 가는 게 맞지 않나요?"

이 짧은 장면은 단순한 낙서 시비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그 감정 구조와 윤리적 기준, 그리고 공동체가 작동하는 방식을 가장 날것의 모습으로 드러내는 사건이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질서에 대한 감각을 윤리와 동일시하게 되었다. 아이들의 낙서는 누군가에게는 미소를, 누군가에겐 불쾌감을 남겼다. 그리고 그 불쾌감은 어느세 '공공성'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된다.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정작 불쾌한 것은 낙서가 아니라 '내 기준에서 벗어난 것'이다.

윤리는 타인을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출발해야 하지만, 우리는 종종 그것을 내 감정을 정당화하는 도구로서 사용한다.

결국 그 말은 "정이 없다"는 외침이 아니라, "나는 이게 싫다"는 선언에 가깝다.


이러한 태도는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라온 문화와도 깊이 연결된다.

"빨리 성공해야 한다. 빨리 인정받아야 한다"

이 명제가 지배하던 시대,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1등'이 되어야 칭찬받고, 그렇지 못하면 의경조차 말할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 성장해왔다.

그래서 패배자는 점점 더 조용해졌고, 어른이 되어서야 비로소 단톡방이라는 익명의 공간에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목소리는 오히려 타인을 향한 감정의 심판이 되곤 한다.

입을 다물고 살아야 했던 사람들의 억눌린 감정이, 익명이라는 탈을 쓰고 '공공성'과 '윤리'의 언어로 재등장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이 오늘날 더 많아진 걸까? 사실, 그렇지도 않다.

예전에도 아이들은 낙서를 했고, 어른들은 그것을 보며 잠깐 인상을 찌푸리기도 했을 것이다.

차이는 하나, 지금은 기술이 그 장면을 포착하고, 공유하고, 확대하고, 재생산한다는 점이다.

SNS, 단톡방, 커뮤니티, 우리는 서로를 너무 잘 보게 되었고, 너무 자주 말하게 되었다.

그 말들이 감정의 이해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감정의 대결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결국 우리는 이 질문 앞에 선다.

놀이터는 아이들의 공간인가, 아니면 어른들의 질서가 투사된 공간인가?

그리고 우리가 만들고 싶은 사회는 무엇인가?

"깨끗하지만 아이의 자유가 없는 사회?"

"때론 어지럽지만 다름을 품을 수 있는 사회?"

분필 하나를 지운다는 건 단순한 정리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가 정말 지워버린 것이 그 분필 낙서뿐이었을까?

어쩌면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여백, 아이들이 남긴 상상의 흔적, 그리고 그 흔적 앞에서 웃을 수 있었던 우리 자신의 여우까지 함께 지워버린 건 아니었을까.


글을 맺으며,

작고 사소한 일이 우리 사회의 민낯을 비출 때가 있다.

분필 낙서는 그런 일 중 하나다. 그 흔적 앞에서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가장 따뜻한 선택은, 조금 느긋하게 기다려주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그 작은 흔적 안에서 우리 모두가 품을 수 있었던 인간다움을 다시 떠올려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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